'빈손' 화물연대 파업 철회…법·원칙 대응에 동력 잃어(종합)
by황병서 기자
2022.12.09 17:39:56
15일 만에 현장 복귀…조합원 62% ‘파업 철회’ 찬성
파업 장기화로 싸늘한 여론…생계 탓에 노조 대오 균열
안전운임제 지속·확대 주장…정부·여당 응할지 '미지수'
전문가 “정부, 압력보단 협상서 합리적 기준 만들어야”
[이데일리 황병서 조민정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하고 현장으로 복귀한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지난달 24일 총파업에 돌입한 지 15일 만이다.
사실상 ‘빈손’으로 현장에 복귀한 것은 파업 장기화에 따른 조합원들의 생계 문제뿐 아니라 ‘법과 원칙 대응’을 고수하는 정부의 강경 대응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화물연대는 앞으로도 안전운임제 일몰 폐기와 품목 확대를 계속해서 요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총파업 철회로 협상 동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장기간 이어진 파업으로 국가 경제에 피해에 ‘책임론’도 나오고 있어 불리한 형국이다.
|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철회한 9일 경기도 의왕시 화물연대 서경지역본부에서 조합원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사진=뉴시스) |
|
화물연대가 9일 오전 9시부터 전국 16개 지역본부에서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철회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한 결과 ‘과반 찬성’으로 총파업 종료 건이 가결됐다. 실제 전체 조합원 2만 6144명 중 3574명(13.6%)가 참여했으며, 이 중 2211명(61.8%)이 총파업 종료에 찬성했다. 반대는 1343명(37.5%), 무효표는 21명(0.58%)으로 집계됐다. 이에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총투표가 종료된 이후 지역본부별로 해단식을 진행한 뒤 현장으로 복귀했다.
화물연대는 이날 ‘총파업 종료 성명서’를 통해 안전운임제 일몰 폐기와 품목 확대를 앞으로도 지속해서 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화물연대는 “정부·여당은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고 안전운임제 지속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종잇장 뒤집듯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만 반복한다면 화물연대는 끝까지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물연대 상위 노조인 공공운수노조도 이날 성명을 통해 “화물연대가 현장 복귀를 결정한 건 일몰 위기에 놓인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한 결단으로 투쟁의 2막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며 “제도 일몰을 반드시 막아내고 전 품목과 차종으로 제도를 확대하는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화물연대는 정부가 지난 6월 파업 협상 당시 약속했던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며 지난달 24일 파업에 돌입했다. 안전운임제는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을 결정하고 공표하는 제도이다. 최저임금처럼 화물 노동자의 권리와 도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적정 운송료를 법으로 정해둔 것이다. 2020년 3년 일몰제로 도입해 이달 31일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 화물연대가 16일째 이어온 총파업을 철회한 9일 오후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출입구에 컨테이너를 이송하는 화물차량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
강한 투쟁 의지를 보였던 화물연대가 파업 철회로 선회한 데는 정부의 ‘법과 원칙 대응’ 기조가 주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2003년 이후 19년 만에 시멘트 분야에 한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며 화물연대 노조원들의 현장 복귀를 명령했다. 전날에는 철강·석유화학 업종으로 업무개시명령 발령 범위를 확대하며 노조에 강경 대응을 이어갔다.
업무개시명령 발동 이후 비조합원뿐 아니라 조합원 일부도 업무에 복귀하면서 물동량이 빠르게 회복되자 파업 동력이 떨어졌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전국 시멘트 운송량은 18만t(톤)으로 평년 동월(18만8000t) 대비 96% 수준을 회복했고, 부산항과 광양항 등 전국 12개 주요 항만의 일일 컨테이너 반출입량도 평시 대비 115%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화물연대의 파업을 바라보는 싸늘한 국민 시선도 파업 철회로 이어진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 6~8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로는 화물연대가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답변은 21%에 불과했다. 반면에 우선 업무 복귀 후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여론은 71%를 차지했다.
또 16일째 이어진 파업에 지친 일부 조합원들이 생계 문제로 현장을 이탈한 데 이어 지하철·철도 노조 등의 협상이 조기에 타결된 점도 화물연대가 파업을 지속해서 나가는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9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파업 문구를 부착한 화물차가 운행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
화물연대는 파업 철회 속 안전운임제의 3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여당이 응할지는 미지수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정부가 법과 원칙으로 밀고 나가면서 이제 품목확대는 물론 안전운임제 연장도 안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며 “화물연대 총파업 철회 등 올해 말까지 이렇게 된 거 보면 앞으로 협상에서도 정부가 상당 부분 강경하게 나갈 키(열쇠)를 갖고 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정부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에서 ‘원점 재검토’로 입장을 바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화물연대가 집단운송거부에 돌입했기 때문에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은 무효화 됐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의 고강도 압박에 화물연대 투쟁 동력과 안전운임제의 미래는 안갯속이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정부 대응은 굉장히 폭력적으로 누르고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안전운임제 연장과 품목확대 때문에 파업을 한 거였는데 결국은 하나도 얻어내지 못해 굉장히 우려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계속해서 이러한 갈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책이 마련돼야한다”며 “안전운임제를 3년 뒤에라도 연장하거나 확대할 수 있게 준비하는 게 정부의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강 교수도 “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했으니까 정부에서도 안 만나겠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제 정부가 약간은 유리한 입장이 됐으니 압력으로 할 게 아니라 합리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어서 이런 문제가 계속 나오지 않게 타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