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톺아보기]대한항공 증자 뒤에 숨은 `환율 그림자`

by박수익 기자
2017.01.10 12:15:00

대한항공 환율 10원 상승→외화환산손실 1000억원 발생 구조
작년말 결산기준 3500억원 외화환산손실 발생한 것으로 추정
외화환산손실은 현금 유출입없지만 손익·부채비율에 영향
유상증자 4500억원은 환율 탓 급등한 부채비율 회복시키는 수준
한진해운 절연효과 긍정적이나 환율 변수는 변함 없어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작년 9월말 기준 대한항공(003490)의 외화부채는 100억 달러(미화 84억 달러+기타통화 16억 달러). 원·달러환율 10원이 오르면 1000억 원의 외화환산손실이 발생하고 반대로 10원 내리면 1000억 원의 외화환산이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2015년 말 1172원(이하 매매기준율)이었던 원달러환율은 작년 9월말 1096원까지 내렸다. 대한항공이 ‘유가 하락=이익 증가’라는 호재와 함께 덤으로 외화환산이익까지 누렸던 호시절이다. 그러나 3개월 새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대선과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작년말 환율은 1208원까지 올라갔다. 연말 환율이 달러당 1200원을 넘은 것은 2008년 금융위기가 불거진 이후 8년 만. 1년 전(2015년 말)보다 36원이 올랐기 때문에 100억 달러의 외화차입이 있는 대한항공은 이론적으로 연간 결산기준 약 3600억 원의 외화환산손실이 발생한다. 물론 4분기만 따져보면 그 폭은 더욱 크다.

외화환산손익은 실제 현금이 오가는 것이 아닌 장부상 평가금액이지만 영업외손익에 영향을 미쳐 자기자본과 부채비율을 움직인다. 부채비율이 움직이면 대한항공처럼 시장성차입이 많은 기업은 원리금 상환압박(기한이익 상실 조건)에 노출된다. 2017년 만기도래하는 2500억 원을 포함 총 8700억원어치 회사채가 부채비율 1000% 초과 시 원리금 상환을 요구해도 된다는 조건으로 투자자를 모집한 것이다. 부채비율 1000%를 넘어섰다고 반드시 대한항공이 원리금을 갚아줘야하는 것은 아니다. 채권자들이 원리금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사유가 발생한다는 의미일 뿐 실제 상환요구는 사채권자집회를 거쳐야한다.

그러나 부채비율이 개선되긴 커녕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이 예견된다면 술렁이는 채권자를 다스릴 다른 카드를 내놓아야만 한다. 돈 잘 벌어서 빚을 갚아 부채비율을 낮추는 것이 최상의 카드이지만 대한항공은 작년 한해 1조원 가량의 돈(영업이익)을 벌어들이고도 남는 게 없었다. 한진해운 손실을 털어내고 이자를 내고 외화환산손실까지 따져보니 돈을 벌긴 벌었는데 뒤로 다 나갔다. 한국신용평가는 대한항공이 작년 연간기준으로 1조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3500억원의 외화환산손실을 포함, 총 5700억원 가량 순손실 발생을 예상했다. 회사에서 보너스를 왕창 받았는데도 카드값 등 이것저것 빼고나니 정작 대출금을 줄이지 못한 형국이다.





유례없는 유가 하락 호황기에도 빚을 대거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부채비율을 더 키운 대항항공은 어디선가 새로운 돈을 구해와야 했다. 신용등급이 한 단계 더 떨어지고(한기평 BBB) 다른 두 곳도 ‘부정적’ 등급전망을 단 `BBB+`를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채시장을 관심을 받긴 쉽지 않다. 지난 연말 추진했던 3억 달러 규모의 해외 영구채(신종자본증권)도 녹록치 않았다. 아직 공식 결산자료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작년 9월말부터 12월말까지 대한항공의 재무상황은 대략 이렇다. 이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연초부터 4500억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금융권에선 작년 9월말 기준 910%이던 대한항공의 부채비율(별도 재무제표 기준)이 연말 환율급등 영향으로 1100%~1200% 수준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만간 대한항공이 공식발표할 연말기준 부채비율도 이 수치에 부합할 전망이다. 오는 3월 증자대금이 들어와 자본확충을 하면 1분기 말 기준으론 다시 200%포인트 수준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환율 급등 이전으로 원상회복 가능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물론 대한항공이 손에 쥘 증자대금은 자본확충과 함께 시시각각 만기가 돌아오는 빚 갚을 돈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재무비율 회복 이상의 의미가 있다. 또 작년과 달리 한진해운과 사실상 ‘절연’했다는 점도 대한항공에겐 돌발변수를 제거한 효과다.

그러나 환율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외부변수와 싸워야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외화부채가 많아 이자비용과 외화관련 손익으로 영업외수지가 들쑥날쑥한다. 작년 대한항공에 큰 도움을 준 보너스(유가 하락)도 올해 낙관하기 어렵다. 연간 약 3200만 배럴(2015년 기준)의 기름을 쓰고 있는 대한항공은 배럴당 1달러만 뛰어도 이론적으로 연간 3200만달러(약 380억원) 영업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기름값도 상당부분 외화 결제다. 항공업종 특수성을 감안해도 근본적 재무구조 개선이 전제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외부환경변수에 흔들릴 상황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이러한 점을 들어 대한항공이 유상증자를 계획대로 진행하더라도 당장 신용등급(전망)을 올릴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다. 환율·유가 등 거시경제변수와 실적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대한항공을 ‘BBB+(부정적)’으로, 한국기업평가는 이보다 한 단계 낮은 BBB(안정적)으로 각각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