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정민 기자
2023.08.01 16:03:48
[이데일리 이정민 인턴기자]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교권 침해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아동학대 고소·고발로 이어지면서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교권 침해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육부가 마련 중인 생활지도 관련 고시에 문제행동 지도를 위한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 교사 93.4%가 찬성했다.
이에 따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교권 보호·회복에 대한 현장 교원 간담회에서 "일선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생활지도 범위·방식을 규정한 교육부 고시안을 8월까지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해외는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교육정책네트워크의 '수업방해 학생에 대한 교내 지도방법'을 토대로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사례를 살펴봤다.
먼저 우리나라 현행법상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확인했다. 작년 12월, 초·중등교육법 개정으로 제20조의2에 교사의 학생 생활지도권이 명문화됐다. 이어 지난 6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제40조의3(학생생활지도)이 신설됐다. 시행령은 학교장과 교사가 학업·진로, 인성·대인관계 분야에서 학생들을 훈계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교사의 생활지도를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법적 보장한 것이다.
문제는 생활지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와 방식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권순형 연구위원의 논문 '초·중등교육법상 생활지도에 대한 법적 성격과 과제'에서는 현행법의 한계를 언급한다. 논문에 따르면 현행법이 “생활지도의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는 개별적·구체적으로 규정함이 없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례에서 제시되는 포괄적인 사항만을 제시하고 있다”며 “포괄적인 사항만으로 학교에서 실질적인 생활지도가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교육부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 제 2조(교원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도 마찬가지다. 고시에서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하여 의도적으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교육활동 침해로 규정했지만, ‘정당한 생활지도’의 개념이 모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은 교육구(區)나 교육청별로 ‘학생 행동 강령’(student code of conduct)을 수립해 학생과 학부모의 서명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학생 행동 강령에는 학교생활에서의 권리와 의무가 명시되어 있고,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단계별로 규정한다. 이에 대한 교사의 대응 방법 역시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미국 3대 교육구인 시카고 교육청(CPS)에서는 학생의 문제행동을 6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 부적절한 행동(inappropriate behavior), 2단계 방해 행동 (disruptive behavior)부터 6단계 불법 행동 및 가장 심각한 방해 행동(illegal and most seriously disruptive behavior)까지. 단계별로 교사가 취할 수 있는 행동과 학생이 받게 되는 훈육 및 처벌의 예시가 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1단계 문제행동에는 복도에서 뛰어다니고 심한 소음내기, 허락 없이 교실 이탈, 수업 진행을 방해하는 행동에 관여 등이 있다. 이에 대해 교사는 학생을 방과 후에 남게 하거나 교사, 학생, 학부모, 관리자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다.
영국은 교사의 구체적인 지도 권한을 교육법에 명시하고 있다. ‘교육 및 감사에 관한 법률’(Education and Inspections Act 2006)에 따르면 교칙 위반 등 용인될 수 없는 행동을 한 학생에 대한 교사의 지도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등하교 시간에 학생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교사는 일대일 훈계, 휴식 시간 박탈, 방과 후 지도, 학교 내 봉사활동 부여 등의 대응을 할 수 있다.
영국은 각 학교가 학생 행동 관리 규칙을 세운다. 영국 교육부가 2017년 위탁한 연구보고서(Skipp, A. & Hopwood, V.)에서는 교내 학생 행동관리의 우수 사례를 종합해 소개한다. 보고서에서는 ‘낮은 수준’의 수업 방해 행동 대처 방안을 제시한다. 낮은 수준의 방해 행동으로는 손장난, 수업 지각, 허락 없이 수업 일찍 나가기, 잡담, 껌 씹기, 음악듣기, 스마트폰 사용하기 등이 있다.
이에 대한 교사의 대응 매뉴얼도 구체적이다. 먼저 학생에게 학습 태도를 고치라는 경고를 한다. 누적 경고 2회 이후에도 방해 행동이 지속될 경우, 해당 학생의 이름을 칠판에 쓰고 학생을 따로 떨어진 책상에 앉힌다. 그럼에도 방해 행동이 지속되면 학교 내에 마련된 별도 학급으로 이동시켜 관리·감독을 받게 한다. 중등학교의 경우, 태도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주거나 최후의 수단으로 교장 면담을 활용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학생의 문제행동 종류와 정도에 따라 대응 주체와 방법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오사카부의 경우 문제행동을 다섯 개의 레벨로 나누어 학교, 교육위원회, 경찰 등 외부기관으로 대응 주체를 달리하고 있다.
레벨 1의 경우, 관리직에 보고하고 담임과 학년부장이 학생을 지도한다. 오사카교육위원회에서 제시하는 문제행동 대응 차트에 따르면 조각도를 사용하는 미술 수업 중 위험한 장난을 하는 학생에게 교사가 주의를 주자, 학생이 교사를 도발하고 놀리는 말을 한 사례가 레벨1에 해당한다.
레벨 2부터는 관리직, 학생 지도교사를 포함한 전체 교원이 문제 상황을 공유하며 학생 행동 개선에 나선다. 수업 시작 종이 울렸음에도 복도에서 공을 차면서 계속 노는 학생들에게 교사가 교실로 들어오라고 재촉했지만,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고 폭언을 퍼부은 사례가 해당한다. 레벨 3에서는 경찰과 연계해 교내에서 지도를 하고 레벨 4부터는 학생에게 출석정지 조치를 취하고 학교 밖에서 지도가 이루어진다. 대응 주체는 경찰, 복지기관 등 외부기관으로 옮겨진다. 수업을 방해하고 담임교사의 지도에 반항하며 교사의 얼굴을 때린 학생에게는 레벨4, 교사에게 전치 3주의 중상을 입힌 사례는 최고 수위인 레벨5가 적용됐다.
캐나다에서는 수업 방해 행동을 12가지로 정의한다. ‘캐나다 상담심리치료학회’(Canadian Counselling and Psychotherapy Association, CCPA) 연구 결과를 따른 것으로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행위 ▲핸드폰, 노트북 등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행위 ▲교사의 허가 없이 교실을 이탈하는 행위 ▲교사가 이야기하는 동안 다른 학생과 떠드는 행위 ▲수업 중 자는 행위 ▲반복되는 지각 등이 그 예다. 교사는 학생이 만성적으로 12가지 문제행동을 보인다면 상담 교사에게 학생 지도를 의뢰할 수 있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의 경우, 학생이 수업을 방해한 경우, 교사가 취할 수 있는 지도 방법을 기본교육법에 규정했다. 핀란드 기본 교육 법령(Finland’s Basic Education Act)에 따르면 교사는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거나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할 수 있고, 최대 2시간 동안 벌로 방과 후에 남게 할 수 있다. 또 학생의 폭력적인 행동이 다른 학생이나 교직원 안전에 위험이 될 정도로 심한 경우에는 귀가시킬 수도 있다.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방과 후 최장 1시간까지 교사 감독하에 남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