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준, 17년만에 한국 땅 밟나…대법, 비자발급 거부 '위법'(종합)

by이성기 기자
2019.07.11 14:23:24

입국금지결정 따랐다고 적법성 보장 안 돼
재외동포법, 병역기피 국적 상실자도 38세 넘으면 체류자격 허용
승소 확정되면 비자발급 여부 다시 판단해야

유승준씨가 지난 2015년 5월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어떤 방법으로든 두 아이와 함께 떳떳하게 한국 땅을 밟고 싶다”며 호소하고 있다.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병역 기피 논란으로 입국이 금지된 가수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승준 유·43)씨의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1일 유씨가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관을 상대로 제기한 ‘사증(비자)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유씨의 비자발급 거부 처분 과정에 행정절차 등을 위반한 잘못이 있어 항소심 재판을 다시 하라는 취지다.

미국 영주권자 신분으로 국내에서 가수로 활동한 유씨는 방송에서 수 차례 “군대에 가겠다”고 공언했다. 2001년 8월 신체검사 당시 4급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유씨는 2002년 1월 입대를 3개월 앞둔 시점에 공연을 위해 국외 여행허가를 받고 미국으로 출국한 뒤 시민권을 취득했다. 병무청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사실상 병역 의무를 회피한 유씨에 대해 입국 금지를 요청했고, 법무부는 유씨의 입국을 제한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외국인의 경우 입국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다. 경제·사회 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돼도 마찬가지다.

이후 미국과 중국 등에서 활동해 온 유씨는 2015년 9월 LA총영사관에 재외동포(F-4) 자격의 비자 발급을 신청했고, 영사관은 유씨 아버지에게 불허 사실을 전화로 알렸다.

유씨는 “재외동포는 입국금지 대상자 심사 대상이 아니며 재외동포 체류자격 거부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아 비자 발급 거부는 부당하다”며 거부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2015년 5월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어떤 방법으로든 두 아이와 함께 떳떳하게 한국 땅을 밟고 싶다”고 호소하며 사죄한 바 있다.

그러나 2016년 1심에 이어 2017년 2심에서도 패소했다.



1·2심 재판부는 “유씨가 입국금지 결정 제소 기간 내 불복하지 않아 다툴 수 없게 됐다”면서 “입국금지 결정에 구속돼 비자 발급을 거부한 처분은 적법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법무부 장관의 입국금지 결정은 공식 방법이 아닌 행정 내부 전산망에 입력한 것에 불과하다”며 “항고 소송 대상인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상급행정기관의 지시는 내부에만 효력을 가질 뿐,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없다”면서 “처분 적법 여부는 상급기관 지시 이행 여부가 아닌 법 규정과 입법 목적, 비례·평등 원칙 등에 적합한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외공관장이 법무부 장관의 입국금지 결정을 그대로 따랐다고 해서 적법성이 보장되는 건 아니며, 재량 행위에 속하는 비자 발급 거부 처분에서 LA총영사관이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외국인이 대한민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아 강제 퇴거된 경우에도 5년간 입국금지된다”면서 “옛 재외동포법상 병역 기피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에도 38세가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외동포 체류자격 부여를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씨에게도 비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재외동포법이 재외동포의 대한민국 출입국과 체류에 개방적·포용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에 비춰 기한 없는 입국금지 조치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영사관이 비자발급 거부를 문서로 통보하지 않고 전화로 알린 것도 행정절차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결 취지대로 행정소송이 유씨의 최종 승소로 확정되면 총영사관 측은 절차적 하자를 보완해 비자발급 여부를 다시 처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