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준기 기자
2015.08.19 16:26:19
美中 간 '압박' 속 朴 "패배의식" 발언 주목
김정은 참석 '오리무중'..조우 불발 가능성↑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다음달 3일 열리는 중국 항일전쟁·반파시스트 전쟁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가운데, ‘열병식’ 참관까지 소화할지를 놓고 청와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전승절 행사에 초청받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참석도 오리무중이어서 관심이 쏠렸던 남북 정상의 조우는 불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단 박 대통령은 방중 자체에는 부담을 덜었다. 청와대와 백악관이 지난 13일 한미 정상회담 일정(10월16일)을 조기에 동시 발표한 게 그 시그널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한·미 양국이 아직 두 달이나 남은 정상 일정을 서둘러 발표한 건 이례적”이라며 “이는 미국에 양해를 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열병식’ 참석 여부다. 중국의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미국이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관을 껄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실제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차관보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한국을 침략했던 마지막 국가(중국)가 행하는 열병식에 한국의 대통령이 참석하는 과연 적절한가”라고 했다.
여권에서도 ‘전승절 참석, 열병식 불참’ 방향이 적절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5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으나, 열병식에는 불참한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패전국 정상으로 중국 전승절 행사에는 참석하되 열병식에는 불참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양국 외교라인의 협의가 지속될 것 같다”며 열병식 참석이 최대 고민임을 시사했다.
국내 여론은 팽팽하다. 이날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긴급 여론조사(18일, 성인 5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열병식에도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39.5%로, ‘참석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32.7%)보다 오차범위 안에서 6.8%포인트 더 높았다.
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경기 과천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국정과제세미나’에 참석, “외교에 있어 ‘아이고 또 우리나라가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지겠네’라고 생각하면 그 자체가 국격에도 맞지 않고 패배의식”이라고 언급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미 동맹 틀 속에서 대중 관계를 중시하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 기조가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의 만남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외교가와 정보당국의 관측이다. 한 소식통은 김 제1위원장의 방중 여부와 관련, “북·중 간의 움직임이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다”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이 방중하더라도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과 의미 있는 대화를 주고받을 가능성은 작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