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2일 이후에 쏠리는 엘리엇의 ‘행보’

by박수익 기자
2015.06.10 15:15:55

합병주총과 관련없는 주식 매입시 장기戰
상법상 권리 활용 다양한 압박 가능성
첫소송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결과 중요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영국의 거장 T.S. 엘리엇(Eliot)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창업자 폴 엘리엇 싱어(Paul Elliott Singer)의 ‘미들네임’을 딴 엘리엇펀드의 공격을 받은 삼성그룹에게 6월은 잔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근래 보기 드문 ‘곤혹스러운 시간’이 되고 있다. 순탄할 것 같았던 국내 굴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틈새를 겨냥한 엘리엇의 행보는 어디까지일까.

엘리엇은 현재 자본시장법상 냉각기간(Cooling-off period) 적용을 받고 있다. 지난 4일 지분보유신고와 함께 경영참여를 선언, 공시 당일과 토·일요일을 제외한 5거래일(11일)까지 지분 추가 취득이 제한돼 있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내달 17일 임시주총에 참석할 주주를 확정하는 시한도 11일이다. 또 냉각기간에 취득한 지분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고 처분 명령 대상이다.

이번에 지분을 신고한 엘리엇어소시에이츠와 양대 축을 형성하는 엘리엇인터내셔널은 국내주식 취득에 필요한 외국인투자등록이 안된 상황이다. 따라서 엘리엇이 내달 17일 삼성물산 임시주총에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7.12%로 확정됐고, 다른 국내외 투자자들이 어느정도 엘리엇의 행보에 동조할지가 그동안 관심사였다.

하지만 엘리엇의 진정한 행보를 가늠할 수 있는 관건은 지분 추가 매입이 가능한 12일 이후라는 관측이 나온다. 엘리엇이 합병주총과는 무관한 주식을 추가 취득한다면, 합병반대 너머에 목표지점을 설정해두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현 지분율로도 상법이 보장한 △임시주총 소집요구 △이사 해임건의 △회계장부 열람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측에 현물배당을 요구한 것도 상법상 주주제안권을 활용한 것이다. 엘리엇이 지분을 추가 매입하거나 보조를 맞추는 투자자가 가세할 경우, 삼성물산의 현 최대주주 지분(13.9%)과 대등해지면서 엘리엇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법적공방외에 상법상 보장된 권한을 활용한 주총소집, 정관개정 등 다양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삼성그룹과 버금가는 지분 취득 후 새로운 임시주총에서 이사해임, 중간배당, 삼성전자·삼성SDS 지분 매각 등 자산양수도, 순환출자 즉각 해소 등을 제시한다면 주총 결과와 관계없이 삼성에는 큰 시련이 생기는 셈”이라며 “삼성에게 최악의 상황은 임시주총 주주확정일(11일)이후 소수 지분을 매입한 외국인이 엘리엇의 우호세력으로 드러나고, 이후 엘리엇이 지분을 추가 매입하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엘리엇의 공세를 차단하고 합병을 완료한다면 지분구도가 지금과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점이 변수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현재의 합병비율(1:0.35)로 합쳐진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합병법인 최대주주(16.5%)가 되는 동시에 특수관계인 포함 40.2%를 확보한다. 반대로 현재 엘리엇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7.12%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합병후에는 2.49%로 대폭 축소된다.

이를 위해서는 엘리엇이 지난 9일 법원에 삼성물산과 이사진을 대상으로 제기한 주주총회결의금지 가처분 신청 결과가 1차적으로 중요한 변수다. 법원이 엘리엇의 손을 들어준다면, 단기간 삼성물산의 주가가 급락할 수 있지만 반대로 엘리엇이 저가매수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구도는 예측불허 상황이 된다.

다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비율(1:0.35)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행 법령이 규정한 대로 산정된 점을 들어 법원이 엘리엇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삼성입장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하는 합병이고, 지난해 삼성중공업·엔지니어링 합병 무산 사태를 겪은 삼성그룹이 이번에는 더 많은 준비를 하고 나섰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가처분이 기각되고 주총이 예정대로 열릴 경우 표대결로 이어진다. 삼성이 국내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지원을 받아 합병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면, 엘리엇 측은 주식매수청구가격 재산정 협상이나 주총 효력정치 가처분 소송 카드 등을 꺼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상 기업 경영권 분쟁과 관련 사건은 동일한 재판부가 계속해서 담당한다는 점에서 첫 소송의 결과가 향후 전개될 수 있는 법적공방에서도 연관성을 지닌다는 것이 법조계의 관측이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엘리엇은 1977년 폴 엘리엇 싱어(71)가 창업한 곳이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의 폴싱어는 자신의 자금과 가족·친지들로부터 끌어들인 130만 달러로 엘리엇을 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엇은 엘리엇어소시에이츠와 엘리엇인터내셔널 두 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에 삼성물산(000830) 지분을 매입한 곳은 엘리엇어소시에이츠다. 전체 운용자산이 미화 260억달러(약29조원), 연평균 수익률은 14.6%로 소개된다. 주주행동주의(Activist)에 입각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엘리엇이 그동안 국내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었지만, 국제금융계에서는 아르헨티나 국채 투자로 유명세를 떨쳤다. 2002년 재정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 국채에 투자한 이후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 불이행)을 선언하자 소송을 제기, 결국 2012년 승소해 16억달러를 상환받았다. 이는 2014년 아르헨티나 재정위기의 단초가 됐다.

이밖에 미국 P&G의 독일 웰라 인수, 미국 유통업체 샵코(Shopko)의 사모펀드 매각, 스위스 인력컨설팅업체 아데코(Adecco)의 독일기업 인수 등에서도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 지분가치를 높인 바 있다. 투자은행(IB)관계자는 “엘리엇이 그간 투자행보를 보면 삼성물산 경영참여 역시 단기차익 보다는 국내법 등 제도를 치밀하게 연구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엘리엇과 삼성그룹의 충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초 삼성전자가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없도록 하는 정관 변경을 단행했다. 당시 우선주를 보유한 엘리엇측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고 최종 승소했다. 당시 시작된 삼성과 엘리엇의 악연이 끊어지지 않고 부활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