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위헌판단에…"유류분 사전포기 도입도 생각해봐야"

by송승현 기자
2024.06.28 16:53:46

민법 1112조 1∼3호 등 위헌·헌법불합치
"형제자매, 유류분청구 소송 사라질 것"
"패륜, 유류분상실사유…증명 중요해질 것"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자녀를 보살피지 않다가 자녀 사망 시 유산만 가로채는 이른바 ‘구하라 사건’을 촉발한 유류분 제도가 최근 위헌 및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으면서 법조계는 향후 민법 개정 방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안으로 유류분 사전포기 제도를 도입하고, 유언대용신탁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단법인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은 28일 오후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제18차 세미나 ‘유류분의 위헌 판단에 대해 어떻게 민법을 개정할까’를 열었다. (사진=송승현 기자)
사단법인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이하 착한법)은 28일 오후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제18차 세미나 ‘유류분의 위헌 판단에 대해 어떻게 민법을 개정할까’를 개최했다. 유류분(遺留分)이란 피상속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배우자나 자녀 등 상속인들이 청구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비율을 말한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25일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1112조 1∼3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오는 2025년 12월31일까지만 효력을 인정하고 그때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잃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아울러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1112조 4호는 위헌으로, 특정인의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 1118조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이날 발제를 맡은 배수영 법무법인 율호 대표변호사는 향후 상속 분야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4가지로 구분해 제시했다. 먼저 형재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1112조 4호가 위헌 결정이 나면서 관련 소송은 모두 기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배 변호사는 “비혼의 증가와 저출산 문제로 인해 소위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본 결정 전이라면 형제자매에 의한 유류분청구 소송이 늘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며 “헌재 결정으로 형제자매가 제기하는 유류분청구 소송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신 공익법인,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 등 제3자에게 생전증여나 유증(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에게 무상으로 증여하는 유언)을 하는 경우가 늘 것이라고 봤다.



아울러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 이른바 ‘패륜’을 일삼는 이들의 유류분청구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 봤다. 결국 패륜이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지가 유류분 청구 소송의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란 얘기다.

배 변호사는 “장기간 자식을 버리고 양육비도 지급하지 않은 채 완전히 연락을 두절했다가 수십 년 경과 후 그 자녀 사망 시 상속만 받으려는 이른바 ‘구하라 사건’ 등도 유류분 상실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관련 입법이 개정될 때까지 재판이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유류분 청구 제도에 기여분 규정 준용 △유언대용신탁(금융사와의 신탁계약으로 유언을 대체하는 것) 활성화 가능성 등도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헌재의 주문에 따라 현재 22대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4가지 발의 돼 있는 상태다. 모두 유류분상실청구권을 신설하는 게 골자다. 이에 대해 배 변호사는 “유류분상실청구권의 도입으로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유류분 사전포기제도나 유언대용신탁과 같은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류분 사전포기제도란 상속인이 상속개시 전에 미리 유류권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는 유류분을 사전에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하더라도 법적으로 무효다.

현재 민법에 유류분 사전포기에 대한 규정이 없고, 대법원도 판례로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이번 기회로 사전포기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배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고령화로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재혼가정과 같이 전통적이지 않은 형태의 가족이 많아져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있다”며 “다만 사전포기가 유류분 제도 취지에 반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에 사전포기를 허용하는 기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