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가계 옥죄는 경제살리기

by최정희 기자
2014.11.06 15:11:49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지난 달 15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수준인 2.0%로 내리던 날, 한은 기자실엔 우울한 분위기가 번졌다.

경제가 얼마나 안 좋길래부터 시작해서 통장 잔고가 떨어지고, 전세값이 오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로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감 자체가 낮다. 아니나 다를까. 금리를 내렸는데도 소비나 기업 심리는 오히려 악화됐다. 10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5로 석 달 만에 하락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심리지수도 각각 72, 67로 떨어졌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릴 경우 1년 뒤 경제성장률이 0.05%포인트 상승한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0.25%포인트로 두 번 내렸으니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상승하는 꼴이다. 대략 내년 경제성장률이 3.8%에서 3.9%로 오르는 수준이다. 그런데 0.1%포인트의 경제성장률이라도 가계에 떨어지진 않을 것 같다.

한은이 최근 오제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릴 경우 가계의 이자비용이 2조8000억원 줄어들지만, 이자소득은 4조4000억원이나 감소한다. 가계가 가진 금융부채보다 금융자산이 더 많기 때문이다. 무려 1조6000억원이 손해인 것이다.



이런 내용은 4일 한은이 공개한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도 나타났다. 한 금통위원은 “금리하락의 경제주체별 이자수지 변동효과 분석 내용을 보면 가계의 편익을 기업으로 이전시킨다”고 밝혔다. 기업이 벌어들인 소득이 왜 가계로 이전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있었던 터였는데 금리 인하로 인해 오히려 가계 편익이 기업으로 옮겨간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전세 버리기’도 가계를 옥죈다. 정부의 10.30 전·월세 대책은 그 이름이 어색할 정도다. “전세값이 너무 비싸면 차라리 집을 사라”는 식이더니 이제는 “집 살 능력이 없어 월세를 산다면 돈을 지원해주겠다”는 식이다. 전세대책이라고 나온 것은 저소득층에 싸게 돈을 빌려주는 방식 뿐이었다.

한은의 금리 인하와 정부의 전세 버리기 정책은 ‘경제 살리기’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론 가계의 목을 조르고 있다. 세계 경제둔화 우려, 수출 경쟁력 하락, 내수부진 등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 가계의 소득을 키우기는 커녕, 주거 불안정만 키우고, 자산마저 축내는 정책들에 긴 한숨만 나온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망령은 과연 누가 끌어들이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