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없다" 김동철 한전 사장, 집무실서 ‘숙박경영’ 나서

by김형욱 기자
2023.09.22 17:46:17

추석연휴 등 휴일 반납하고,
주7일·24시간 현안 챙기기로
2만여 임직원 긴장 불어넣고,
요금인상 등 정치적 해법 모색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결연히 나아가겠다”는 일성과 함께 지난 20일 취임한 김동철 한국전력(015760)공사(한전) 사장이 취임 후 주7일·24시간 퇴근 없이 집무실서 숙박하며 현안을 챙기기로 했다.

22일 한전 관계자와 업계에 따르면 김 사장은 지난 20일 취임 직후 전남 나주 본사 집무실을 ‘워룸(비상경영 상황실)’로 이름 붙이고 간이 침대에서 ‘숙박 경영’을 시작했다.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0일 전남 나주 한전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하고 있다. (사진=한전)
그는 지난 20일 취임 직후 한전 간부들에게 “당면 위기 극복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까지 이번 추석 연휴를 포함한 모든 휴일을 반납하고 24시간 핵심 현안을 챙기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이 아닌 경영자로선 보기 드문 파격 행보다. 그는 본사 바로 옆 관사도 마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 첫 정치인 출신 한전 사장으로서 역시 사상 최악의 재무위기 상황을 정치적으로 풀어보려는 의도도 해석할 수 있다. 한전 사장의 ‘숙박 경영’은 2만여 한전 임직원에게 긴장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 현 위기의 심각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효과가 될 수 있다.

김 사장은 내주까지 본부별 업무보고를 받으며 한전 역할의 재정립과 전기요금 정상화, 특단의 추가 자구책을 마련해 나가기로 했다. 통상 공공기관장이 취임하면 업무보고에 2~3주가 걸리는데 이 역시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한전의 상황은 그만큼 심각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발전(發電) 연료비가 폭등하며 지난 2년 반 동안 47조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역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적자 규모다. 순부채도 지난 6월 말 기준 201조로 치솟았다. 국가 전체 연간 예산의 30%에 이르는 규모다. 이 기간 전기요금을 40% 가량 올랐으나 2~3배씩 폭등한 원가를 메우긴 역부족이다. 더욱이 지난달부터 국제유가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며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단기적인 해법은 몇 없다. 전기요금을 더 올리거나 한전법 개정으로 더 많은 한전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다만, 요금을 올리려면 산업부 인가와 기재부 협의, 궁극적으론 정부·여당의 ‘OK 사인’이 필요하다. 더 크게 보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당·정이 요금 인상 결정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결국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의 요금 인상은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이미 이자비용만 연 2조5000억원에 이르는 현 상황에서 더 많은 빚을 내는 건 한전을 아예 수렁에 빠뜨릴 수 있는 문제다. 한전 영업이익은 국제유가가 급락한 2020년 전후엔 12조원의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으나 대개는 5조원 이내였다. 현 상황이 정상화하더라도 길게는 10년 이상 전기요금을 거둬 남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이자를 내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은 2026년까지 직원 복지 등 비용 축소와 자산 매각 등 자구 노력을 통해 그룹사를 포함해 25조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대책을 세웠지만 역부족이란 게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한전의 비용 지출은 어차피 4분의 3이 발전연료와 전력구입비고, 나머지도 대부분 필수 송·배전 설비 투자비용이다.

김 사장의 행보는 필연적으로 전기요금 정상화란 숙원 과제를 해소하기 위해 당정, 그리고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취임사에서 전기요금 정상화를 위한 국민적 동의를 얻고자 뼈를 깎는 경영 혁신과 내부 개혁을 보여주는 특단의 추가 대책을 강구키로 했다. 또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을 포함한 에너지 신산업 확대와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은 제2의 원전 수출을 통해 전체의 93%를 전기요금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도 바꿔 나간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한전 임직원에게 “내게는 한전 사장이 마지막 공직이 될 것”이라며 “어떤 수고와 노력도 마다 않고 맨 앞에 서서 여러분과 길고 힘든 여정에 고통을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