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협약부터 '다카폐기'까지...트럼프 vs 실리콘밸리 갈등사
by차예지 기자
2017.09.06 14:33:26
| 미국에서 추방 위기에 몰린 불법 체류 신분 청년들이 다카 폐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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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차예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불법 체류 신분인 청년들의 추방을 유예하는 프로그램인 ‘다카(DACA)’ 폐지를 5일(현지시간) 선언했다.
다카 폐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다.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의회, 일할 준비 하라. 다카!”라는 글을 올리며 다카 폐지를 지시했다.
다카(DACA)는 어려서 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온 불법체류 신분의 청소년들을 구제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2012년 8월부터 시행됐다. 한인 1만여 명 등 80여 만명이 헤택을 보고 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일제히 다카 프로그램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들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다카 폐기가 젊은이들의 꿈을 짓밟는 잔인한 짓’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다카 폐기 결정은 단지 잘못된 결정만이 아니다”며 “젊은이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제공하고, 그들이 어두운 그림자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독려하며, 정부를 신뢰하도록 하려는 노력을 잔인하게 짓밟고 끝내는 그들을 처벌하겠다는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팀 쿡 애플 CEO도 직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애플은 의회 지도자들과 ‘꿈꾸는 사람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의회 논의 과정에서 이를 중단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현재 애플에는 다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는 직원이 250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또한 “드리머는 우리의 이웃이며 친구이자 동료이며 미국은 그들의 고국”이라며 “의회는 다카 보호를 위해 지금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드리머는 우리의 나라와 공동체를 더 강하게 만든다”며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다양성과 경제적 기회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IBM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IBM의 드리머들이 우리 회사와 미국의 경제에 긍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들이 미국에 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초당적인 의회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실리콘밸리와 트럼프 행정부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IT기업은 기후변화와 반이민 정책 등을 둘러싸고 트럼프 행정부와 격렬하게 대립해왔다.
이는 양쪽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상을 바꾸고 있는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등 글로벌 IT공룡이 모인 실리콘밸리는 외국 우수 인력을 유치해 혁신과 창조로 전통 산업을 대체하려고 한다.
실제로 미국에 전문직 비자를 받아 오는 외국인의 상당수는 실리콘밸리에 취업한다. 미국 이민국에 따르면 H-1B 비자로 미국에 오는 외국인은 연평균 6만5000명 가량이다. 미국 취업비자 대행업체 마이비자잡스에 따르면 2016년 말까지 H-1B 비자로 취업한 외국인은 IBM 1만2381명, MS 5029명, 구글 4897명, 아마존 2622명, 애플 1660명 등이다.
이에 지난해 7월 실리콘밸리 창업자, 투자자와 임원 145명은 “혁신의 재앙”이라며 공식적으로 트럼프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실리콘밸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대통령 당선 직후 서로의 필요에 따라 ‘테크 서밋’으로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모색했던 트럼프와 실리콘밸리의 허니문은 얼마 안 가 깨졌다. 트럼프가 취임 직후 밀어붙인 반이민 행정명령 때문이다.
또 지난 5월에는 애플과 페이스북 CEO 등 실리콘 밸리 IT 업계 거물 12명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텍사스 주지사에게 대표적 성 소수자 차별법으로 불리는 ‘화장실 법’을 통과시키지 말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성전환자 보호를 두고 대립하기도 했다.
그렇게 쌓여가던 트럼프와 실리콘밸리의 갈등은 지난 6월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급격히 악화됐다. 트럼프가 미국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협정을 탈퇴했지만 많은 미국 IT기업은 기후협정을 지키는 여러 국가에서 사업하기 때문에 현지 규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25개 주요 기업은 트럼프가 파리협정에 남을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로 싣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탈퇴를 공식발표하자 실리콘밸리에서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 정부의 경제자문위원으로 남아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마저 “기후변화는 실체”라며 자문단을 떠났다. 그는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자문위원회와 제조업일자리위원회 두 곳의 자문위원을 맡아왔다.
실리콘밸리 IT 기업들 가운데 트럼프 정부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는 머스크 CEO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테슬라의 전기차는 지구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어왔기 때문이다. 머스크가 전기차를 시작한 동기 중 하나는 전기를 통해 대기 환경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