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준기 기자
2015.07.13 16:28:40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국가발전’을 강조하며 ‘광복절 특사’를 공식화한 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그리스 재정위기 등 대내외적 리스크로 사면초가에 몰린 경제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임기 후반기 ‘경제활성화’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인의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다. 재계에서 요구하는 ‘기업인 특사’를 전격 받아들일 수 있다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특히 ‘국민대통합’을 전면에 내세운 점은 현 정권과 대척점에 섰던 노무현·이명박 정권 인사들을 사면 대상에 포함,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한편 소통과 통합의 행보를 통해 각종 개혁과제에 대한 ‘성과’를 가시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특별사면권의 엄격한 제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집권 3년차인 현 시점까지도 박 대통령의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 사면권을 행사한 건 지난해 1월 5900여명 규모의 서민 생계형 사범에 대한 설 명절 특사가 유일한 점이 이를 잘 반영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여론의 반응을 미리 떠보는 이른바 ‘애드벌룬 기법’이나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아 왔다는 점에서 사면에 대해 긍정적 입장으로 선회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사실상 일부 기업인과 정치인의 사면을 긍정 검토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셈”이라고 봤다. 새누리당은 더 나아가 “‘통 큰 사면’을 적극 검토해주길 당부한다”(박대출 대변인)고 까지 했다.
가장 주목받는 기업인은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경영 일선에는 복귀했으나 법적으로는 대표이사직 복귀를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형기의 3분의 2가량을 채우며 가석방 요건을 갖춘 최 회장의 부재는 SK그룹이 대규모 인수합병(M&A)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도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 구본상 LIG넥스원 전 부회장 등이 사면 대상자로 언급된다.
노무현·이명박 정권 인사들이 사면 대상에 이름을 올릴지 관심이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이 전 대통령 측 사람들과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정봉주 전 의원 등 야권 인사들까지 사면 대상으로 거론된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강조한 건 사실상 정치인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각종 개혁과제가 당내 비박(비박근혜)계와 야권의 도움이 없이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줄곧 사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 왔다는 점이다. 만약 정·재계를 망라한 대규모 사면이 현실화할 경우 자칫 ‘말 바꾸기’ 논란으로 확산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사면’을 공식화하고 나선 건 ‘경제활성화’와 ‘국민대통합’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는 관측이 많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일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업인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정부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삼성과 현대차 등 30대 그룹 사장단은 ‘경제난 극복을 위한 공동 성명’을 채택하면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적 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다시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사실상 복역 중인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가석방을 공식 요청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른바 ‘유승민 거취 정국’으로 어수선한 당·청 상황을 조기 수습하고, 집권 후반기 경제활성화 등의 가시적 성과를 도모한다는 구상인데, 이 과정에서 투자 활성화나 노동시장 개혁 등 기업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과 맞물리는 대목이다. 여권 관계자는 “기업인 사면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는 항상 ‘납득할 만한 이유’라는 단서가 달렸다”며 “단정적으로 ‘기업인 사면은 안 된다’고 발언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국민 법 감정이나 사회적 정의 관념을 거스르지 않으려면 일부 인사만 한정적으로 사면 혜택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면 대상자 검토가 이뤄지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