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쉬는 30·40대, 일할 수밖에 없는 노인[목멱칼럼]

by논설위원 기자
2023.10.25 14:10:00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 명예교수

지속되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고용지표가 이례적으로 양호하다. 9월 기준 고용률은 올해 역대 최고, 실업률은 역대 최저이고 지난 8월에는 실업자 수가 통계 작성이래 처음으로 6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양호한 고용지표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상황을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일이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그냥 쉬는’ 40대 이하 취업 포기자가 100만 명 가까이 된다. 경제의 핵심 계층인 30∼40대 중에 그냥 쉬는 사람이 54만7000명이다. 지난 해 9월 대비 6.7%, 3만 4000명 늘었다. 그냥 쉬는 30∼40대 수는 코로나로 힘들었던 2020년(58만5000명)과 2021년(56만9000명)에 근접하고 2018년(36만7000명)과 2019년(46만8000명)과 대비하면 각각 49.0%, 16.9% 증가했다. 4개월 째 증가하던 그냥 쉬는 15∼29세 청년들이 그 수가 9월에는 줄었으나 여전히 37만3000명의 젊은이가 그냥 쉬고 있다.

60대 이상 취업자가 고용을 견인하고 있다. 9월에 늘어난 전체 취업자는 30만9000명, 60대 이상 취업자 증가는 35만4000명으로 상당수가 재정일자리인 60대 일자리를 제외하면 고용이 오히려 줄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60대 이상 취업자가 일자리 증가의 버팀목이었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가난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이하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우리나라가 40.4%인 반면 호주는 22.6%, 미국은 20.6%, 영국은 13.1%, 캐나다는 12.1%, 이탈리아는 10.3%이다.

우리나라 노인이 가난한 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도입이 늦어 공적연금을 받는 고령층의 비중이 60%이하이고 자식들로부터 도움을 기대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65세 고령자 취업자 4명중 3명이 자식과 따로 살고 있다.

일하는 노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률은 36.2%로 지난 10년간 6.1%포인트 증가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일하는 노인들이 많다. 일하는 고령자 비율은 OECD 회원국 평균(15%) 대비 2배 이상이다. 초고령사회인 일본(25.1%)보다 높다. 실질적인 은퇴 연령은 남녀 모두 75세 전후로 OECD 회원국 중 제일 높다.



일하는 많은 노인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법적 정년이 60세이나 명예퇴직, 권고사직의 형태로 비자발적으로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연령이 평균 49세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후 비정규직이나 정부가 제공하는 재정일자리에 의존해 살고 있다.

일하는 80대가 2022년 기준으로 36만2000명으로 5년 전에 비해 2배 늘었다. 기대수명이 100세에 근접하면서 향후에는 일하는 노인이 더 많아질 것이다.

많은 고령층이 제대로 된 일자리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노동시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법적 정년 60세를 상향 조정하자는 주장이 노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법적 정년과는 별개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올해 노사협상에서는 정년 연장이 주된 이슈의 하나였다.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시장 개혁 없이는 대기업, 공공부분 종사자 등 일부 계층만이 법적 정년연장의 수혜를 볼 것이다. 법적 정년 연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장년층이 주된 일자리에서 50세 이전에 밀려나고 젊은이 들이 원하는 대기업, 공공부문 일자리는 줄어들어 청년 취업난은 심화될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을 시작으로 학벌이나 근속이 아닌 능력과 성과에 따라 평가를 받는 열린 노동시장이 구축돼야 한다. 청년들이 노동시장 진입 시부터 대기업 입사에 매달리지 않고 고령층도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눈치를 보지 않고 주된 직장에서 역량을 인정 받으며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73세까지 즐겁게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