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사회, 러시아에 냉·온탕 전략..우크라엔 자금수혈

by이정훈 기자
2014.03.04 16:04:18

EU 외교장관들, 푸틴 체면살려줄 출구전략 모색
오바마 "고립시킨다"..여행금지-자산동결 등 검토
우크라, 경제개혁 이행 약속..IMF-EU 20억불 지원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미국과 러시아간 일촉즉발 상황까지 내몰렸던 우크라이나 상황이 주춤하고 있다. 강력 제재를 일방적으로 채택하기 힘든 미국과 군사 도발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아끼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데 따른 것이다. 대신 서구사회는 우크라이나에 긴급자금을 지원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체면을 살려줘 군대를 물릴 수 있는 출구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 고립책-출구전략 병행..냉온탕 전략

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은 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외교장관들은 이날 회의에서 “러시아의 군사 개입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러시아가 군사를 철수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를 겨냥한 선별적 조치들을 내놓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같은 경고는 원론적 차원일 뿐 실제로는 러시아에 “대안으로 국제사회 감시와 중재를 받아들이라”고 조언을 제시하는데 방점을 뒀다. 이날 파이낸셜 타임스(FT)도 외교장관 회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점진적 군대 축소(de-escalate)’와 ‘출구(off-ramp)’였다고 전했다.

결국 현 단계에서 정책 우선순위를 우크라이나의 긴장 완화에 두면서 푸틴 대통령으로 하여금 적당히 체면을 세우도록 해줘 차츰 군대를 철수할 수 있도록 출구전략을 마련하자는 얘기다.

EU 국가들의 이같은 방침과 사전 조율이 이뤄진듯 조셉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외교장관 회의 직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크림 자치공화국에 실사단을 파견하는 방안을 거듭 제안했다. 이미 푸틴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실사단, 중재기구 설치에 합의한 만큼 러시아도 이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미국은 냉탕전략도 지속적으로 병행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에 대해 모든 경제·외교적 제재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러시아는 철저하게 고립될 것이고 경제는 부정적 영향을 입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구체적 제재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상원 유럽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소속 크리스 머피(코네티컷주) 의원은 “상원은 현재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며 러시아 고위층의 여행 금지와 자산 동결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우크라에 긴급자금 수혈..개혁이행 약속

이처럼 순차적 출구전략이 먹혀들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가 단기적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하는 만큼 서구사회는 당장 필요한 자금을 긴급 지원 형태로 수혈하기로 했다.

아르세니 야체뉵 총리는 이날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경제구조 개혁 조치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의 핵심적 전략 자산인 원유와 천연가스 부문에서 일부 민영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과 EU는 최대 20억달러(약 2조1400억원)를 우크라이나에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IMF가 최근 새로 도입한 신속금융제도(RFI)로 구체적인 개혁 프로그램 합의 없이도 최대 10억달러까지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4일 키예프에 도착하는 IMF 실사단은 열흘간 일정으로 우크라이나 경제상황과 구제금융에 필요한 경제·금융 개혁 조치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또한 EU도 자체 자금을 활용해 10억달러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주 후반인 6일쯤 열리는 EU 정상들간 긴급회담에서 이같은 지원 문제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크림반도 지역에서는 한 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최후통첩을 보냈다는 루머가 나돌며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은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흑해함대가 우크라이나 해군에 새벽 5시(한국시각 오전 10시)까지 투항하지 않으면 군사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해왔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관영 인페르팍스통신은 흑해함대 관계자를 인용해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