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연·정부·엔젤투자' 삼각 네트워크…핀테크 성장 이끈다

by김영수 기자
2015.04.29 15:30:00

[핀테크, 글로벌 현장을 가다③]
영국 테크시티 UK
IT기업·벤처창업가 입주
전자금융 연구·개발 허브
정부, 우수기업에 세제혜택
글로벌금융사 투자 지원도

[런던=이데일리 김영수 기자] “핀테크(Fintech) 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산학연(産學硏)·정부·엔젤투자가’ 등의 삼각 클러스트 형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벤처기업과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이미 한 단계 발전된 기업은 다시 인큐베이팅 업체를 지원하는 선순환 환경이 조성돼야 핀테크는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일 영국판 실리콘밸리인 런던 동부의 올드스트리트(Old Street). 이 지역 바우어 빌딩에는 신생 벤처기업의 인큐베이팅 등을 돕고 있는 ‘테크시티(TechCity) UK’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 만난 질라 콰이저(Zheela Qaiser) 테크시티 UK 파트너십 매니저는 영국에서 핀테크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산학연·정부·엔젤투자자 등 삼각 클러스터를 통한 네트워크가 빛을 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런던 동부 올드 스트리트(Old Street)는 활력이 넘친다. 2008년에 처음 당선돼 2012년 재선에 성공한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은 건물 증측과 리모델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드 스트리트에는 고풍스러운 영국식 건물보다는 현대식 빌딩들이 차곡차곡 들어서고 있다.
▲런던의 올드 스트리트는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이 재선에 성공한 이후 건물 증측 및 리모델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드 스트리트 곳곳에서는 빌딩 증측 공사장을 볼 수 있다. [사진=이데일리 DB]
섬유와 기계부품 그리고 통조림 공장이 있었던 올드 스트리트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다소 긴 시간이 걸렸다. 산업 구조가 바뀌며 하나 둘 공장문이 닫기 시작하자 사무실 임대료도 마련하지 못하는 젊은 벤처기업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가 이들을 주목한 시기는 2010년이다. 당시 제임스 카메론 영국 총리는 테크시티 조성안을 발표했다. 옛 공장 부지가 정보통신기술(ICT)의 중심지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도의 중간 빨간색으로 표시된 위치는 신생 벤처기업의 인큐베이팅 등을 돕고 있는 ‘테크시티 UK’가 입주해 있는 바우어(Bower) 빌딩(위 사진·테크시티의 새로운 랜드마크)이 있는 곳으로, 올드 스트리트의 중심부다. 벤처기업들은 이를 중심으로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현재의 테크시티를 형성하게 됐다. [사진=이데일리 DB]
테크시티 UK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테크시티에는 2000여개의 벤처기업이 자리잡고 있으며 런던에서만 IT 벤처기업 수는 10만개에 육박하고 있다. 관련 종사자만 25만여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영국 전역으로는 146만명에 이르고 있다.

질라 매니저는 “직원 2명뿐인 스타트업을 시작으로 우버·에어비앤비 같은 신생 벤처, 그리고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이 자리잡고 있다”며 “사업 분야은 전자지불결제를 포함해 △클라우드 컴퓨팅 △웹서비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모바일 및 테블릿 부문 △오디오 디자인 △디지털 마케팅 등으로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소셜미디어 관리 애플리케이션 제작업체 트윗덱, 게임업체 킹닷컴 등 유명 벤처기업들이 이곳에서 성장했다. 이에 따라 테크시티는 전 세계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이장균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영국의 핀테크 시장은 높은 수준의 금융환경, 새로운 사업모델에 대한 개방성, 높은 모바일 및 인터넷 침투율, 기존 금융서비스 공급자를 바꾸려는 경향 증가 등으로 다른 EU국가들 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특히 영국의 금융산업 시장규모는 1400억 파운드(GDP의 9.4%)로 세계적인 수준인데다가 총인구 약 6300만 명 중 110만명이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등 상대적으로 핀테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고급 인력풀도 많아 핀테크 사업기반이 탄탄하다”고 설명했다.

▲‘테크시티 UK’에 입주해 있는 신생 벤처기업들은 개인별·연구분야별로 각 팀을 구성해 창업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DB]
영국이 핀테크 산업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성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핀테크 사업영역 및 시장 규모 [자료=여신금융연구소]
여신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영국의 핀테크 시장규모는 2013년 연간 총수입 기준 약 200억 파운드 정도인데 사업영역별로는 지불결제가 100억 파운드로 금융 데이타 및 분석(38억 파운드), 금융 소프트웨어(42억 파운드), 플랫폼(20억 파운드) 등 여타 시장규모를 압도하고 있다.

시장 파급효과가 큰 만큼 영국정부는 테크시티를 활성화하기 위해 법인등기 절차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온라인으로 모든 절차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정부 운영 사이트인 ‘컴퍼니스 하우스’에 접속해 회사명, 주소, 자본금, 주주 등 기본 정보를 입력한 뒤 수수료 15파운드(약 2만 6000원)를 내면 하루 만에 법인설립 등기를 마칠 수 있다. 여기에 예비 창업자들은 산학연과 연계된 8시간 분량의 온라인 디지탈 창업 교육 과정을 수강·이수해야 한다.

이처럼 회사 창업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철저하게 상업적 능력을 검증받아야 향후 엔젤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만큼 테크시티에 모인 예비 창업자들은 열정적인 활동을 벌일 수밖에 없다.

▲테크시티는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젊은 벤처창업자가 모이는 허브로 자리 잡아 활력이 넘쳐나고 있다. 테크시티 UK에 입주한 신생 벤처기업인들이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넓은 칠판과 소파에서 각자의 아이디어를 토론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DB]
특히 테크시티 내 인큐베이팅 과정에서는 창업 비즈니스 모델이 같은 개개인들이 모여 팀을 이루기 때문에 팀웍이 중요하다. 팀에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서는 더욱 안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창업에 몰두해야 하는 셈이다.

▲테크시티에서 선정한 미래 발전 가능성이 높은 50개 벤처기업들의 CI. [사진=이데일리 DB]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영국 정부는 영국투자청 산하에 투자자·창업자를 연결해주는 테크시티 전담 투자기관(TCIO)을 조직하는 한편, 금융감독원(FCA) 산하에도 ‘프로젝트 이노베이트’라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도움을 신청한 신생 벤처기업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거나 업계 전문가들을 소개해준다. 향후 창업에 성공하면 사무실 임대료 할인 등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영국 정부는 특히 테크시티의 기술력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금융산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레벨39(Innovate Finance)’라는 유럽 최대의 핀테크 클러스터를 조성해 IT기업에게 자금조달과 경영자문을 지원하고 있다. 레벨39는 HSBC, 바클레이즈 등 영국의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협력해 런던의 중심부 ‘원캐나다스퀘어’ 빌딩의 최고층인 39층을 벤처기업들에게 통째로 내준 것을 말한다.

질라 매니저는 “테크시티의 성공은 열정적인 벤처기업인과 산학연·정부·엔젤투자가 등 삼각 클러스터를 통한 네트워크의 선순환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이런 노력에 힘입어 테크시티는 유럽의 젊은 벤처창업자가 모이는 허브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