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이강백 "실수 반복하는 '나'에서 출발했다"

by김미경 기자
2015.03.10 14:27:41

극 화두 '오늘'…2008~2014년 현실 짚어내
인간 풍자 그린 신작 '여우인간' 무대 올려
옴니버스 구성…'김광보 연출' 적극 추천

이강백 작가가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3층 종합연습실에서 열린 연극 ‘여우인간’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세종문화회관).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과찬이다. 한국 대표 극작가라고 소개할 때 찬물을 많이 마셨다. 속이 탔다. 어떤 작가는 소재를 좀더 객관적이고 광범위하게 찾는데 내 작품 대부분은 내 기분이나 상황에서 소재를 얻는다. 이번 작품은 같은 실수를 자꾸만 반복하는 제정신이 아닌 나로부터 착상하게 됐다.”

역시 이번에도 ‘오늘’을 이야기한다. 극작가 이강백(68)은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3층 종합연습실에서 열린 연극 ‘여우인간’ 제작발표회에서 “마치 어디에 홀린 것처럼 계속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더라”며 이번 작품을 쓴 배경에 대해 이처럼 밝혔다.

이강백은 1971년 등단 이후 수십 년간 줄곧 한국의 ‘오늘’을 이야기해왔다. 이번 ‘여우인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바 역시 오늘. 광우병 촛불시위가 있었던 2008년부터 세월호 이후인 지난해 말까지 현실을 파헤친다.

이강백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게 되면 깊은 좌절감에 빠지고 과거만 반복하게 되는데 바로지금의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느꼈다”며 “이솝우화나 전래동화 같은 데서 보면 여우한테 홀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역으로 여우를 등장시켜 여우 시선으로 우리 시대를 바라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작품이 출발했다”고 이야기했다.



연극 ‘여우인간’은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희극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풍자우화극. 연출가인 김광보 극단 청우 대표와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의 김혜련 예술총감독이 의기투합했다. 인간 세상에 들어온 여우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 한국의 뒤틀린 현실을 꼬집어내면서도 묵직하게 짚어낼 생각이다.

사냥꾼이 놓은 덫에 꼬리를 잘린 월악산 여우 4마리가 트럭을 얻어 타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강백은 “현대사에 올라온 여우가 바라보는 인간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퍼즐처럼 기승전결 없이 펼쳐지는 옴니버스 스타일의 연극”이라며 “25명이 등장할 할 정도로 복잡하고, 목구멍까지 차 오른 절박한 말들을 빨리 쏟아내고 싶었는데 작품을 써놓고도 마땅히 공연할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 선뜻 작품을 올리자고 한 것이 서울시극단이었던 것. 그는 “첫 번째로 떠올랐던 게 서울시극단이었다. 시극단에 처음 문을 두드렸는데 이미 예정된 작품까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며 “물리적으로 못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마다하지 않고 해준 서울시극단에 감사하다. 또 복잡한 작품을 잘 풀어나가고 있는 김광보 연출에게도 고맙다”고 마음을 표시했다.

김광보 연출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김혜련 서울시극단 단장이 연출을 물었을 때 김광보 연출로 가자, 안심하고 맡겨도 되겠다고 말했다”며 “두 번째 리딩 때 바로 안정감을 느꼈다. 쉰 개가 넘는 블록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데 굉장히 재미있다”고 극찬했다.

연극은 여우들이 겪은 사건들을 우화, 놀이, 그림책 해설, 영상, 노래 등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놓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한다. 폭소와 냉소, 실소가 이어지는 장면 속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 본연의 모습과 되새겨봐야 할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아픈 질문을 던진다. 공연은 3월27일∼4월12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관람료는 2만∼5만원. 02-399-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