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사용내역 공유하라" 가정법원 판결에…대법 "지나치다"

by남궁민관 기자
2020.06.01 12:45:31

비양육자 뿐 아니라 양육자에게도 양육비 지정
계좌 만들고 연결 체크카드 사용내역 공유 명령도
대법 "비양육자가 분담할 양육비만 결정해야"
또 "양육자 재량 지나치게 제한" 사건 돌려보내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이혼청구 소송 과정에서 양육자에게 일정 액수의 양육비를 부담하게 정하고, 새 계좌를 개설해 사용내역까지 비양육자에게 공유토록 한 가정법원의 판결은 ‘지나친 간섭’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아내 A씨가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등 청구소송에서 양육비 부분을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사건을 인천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이데일리DB)


앞서 A씨는 B씨를 상대로 이혼 청구를 하며 자신을 친권자와 양육자로 지정하고 B씨가 양육비를 지급해 줄 것을 청구했다.

이에 1심에서는 A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고 친권자와 양육자로 A씨를 지정했다. 또 B씨에게는 양육비로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월 50만원, 중학교 입학 전까지 월 70만원, 그리고 성년이 되기 전까지 월 9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이어진 2심에서는 양육비 관련 좀 더 구체적인 명령을 담은 판결이 나왔다.

2심 재판부는 B씨뿐 아니라 A씨 역시 매월 일정 양육비를 부담하고, 새 계좌 개설 및 이와 연결된 체크카드를 통해 양육비 사용 내역을 B씨와 공유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2심 재판부는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A씨는 월 30만원씩, B씨는 월 50만원씩 각 부담한다”면서 “아이의 양육비가 투명하게 관리되도록 A씨와 B씨는 ‘A씨 또는 아이’ 명의로 새로운 예금계좌를 개설하고 이와 연결된 체크카드를 발급해, A씨는 양육에 소요되는 비용을 해당 체크카드를 통해 지출하고 B씨에게 지출내역을 분기별로 알려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나친 간섭으로 보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재판상 이혼 시 친권자와 양육자로 지정된 부모의 일방은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고, 이 경우 가정법원으로서는 자녀의 양육비 중 양육자가 부담해야 할 양육비를 제외하고 상대방이 분담해야 할 적정 금액의 양육비만을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예금계좌 개설과 양육비 지출 내역을 공유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 또는 아이’ 명의로 새로운 예금계좌를 개설하도록 했는데 A씨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되 아이의 명의를 덧붙여 기재하라는 것인지, A씨와 아이의 공동명의 계좌를 개설하라는 것인지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판결 주문으로서 갖춰어야 할 명확성을 갖추지 못해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또 “양육자인 A씨는 아이의 행복과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양육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며 “원심 판결과 같이 양육비 지출내역을 B씨에게 알려야 하는 것은 양육자 A씨의 재량을 지나치게 제한하며, 양육비의 사용 방법에 대해 두 사람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오히려 추가 분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