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pick] 여덟번의 No…메이, 사표 던졌다
by방성훈 기자
2019.03.28 11:22:14
‘사퇴’ 승부수 띄운 메이 총리…마지막 카드 통할까
메이 합의안 세번째 도전…하원의장·DUP 반대 변수
메이 총리 사퇴 시기는 언제?…6월 G20 직후 유력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합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자진사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신을 던지더라도 합의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마지막 승부수다.
만약 메이 총리의 합의안이 통과되면 최악의 상황인 ‘노딜 브렉시트’를 막을 수 있다. 또 5월22일까지는 브렉시트와 관련해 추가 논의 또는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다.
메이 총리는 27일(현지시간) 보수당 평의원 300명 가량이 모인 ‘1922 위원회’에서 “우리는 합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면서 합의안이 통과되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와 당을 위해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생각보다 일찍 자리를 떠날 준비가 돼 있다. 여기 있는 의원 모두가 합의안을 지지한다면 질서 있게 EU를 떠나는 역사적 의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이 총리 연설을 청취한 보수당 제임스 카틀리지 의원은 BBC에 “그녀는 합의안이 통과된다면 브렉시트 다음 단계 협상에 (총리직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길을 터줄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메이 총리가 반란군(rebels)을 길들이기 위해 처절하게 마지막 카드를 써버렸다”고 보도했다.
메이 총리의 연설은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의향투표(indicative vote)’를 실시하기 전에 이뤄졌다. 이날 의향투표에서는 브렉시트 대안 8개 모두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영국 언론들은 “비참한 실패”라고 했지만 일각에서는 보수당이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통과시키고 그를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의도된 전략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간 메이 총리의 합의안에 반대해 온 일부 의원들이 메이 총리의 사퇴 선언 이후 돌연 찬성표를 던지겠다며 지지를 선언해서다.
이미 수십명의 보수당 의원들이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것으로 전해졌다. 1순위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도 메이 총리의 사퇴 발표 직후 “합의안을 기꺼이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드 브렉시트 지지자인 존슨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메이 총리의 소프트 브렉시트 합의안에 반발해 자진 사임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 대표는 “메이 총리가 초래한 브렉시트 혼란이 국가 이익 때문이 아니라 보수당 내부 문제가 원인이었다는 게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메이 총리가 일방적으로 브렉시트를 추진하면서 혼란을 키운 측면이 있지만, 보수당 내 권력 다툼이 주된 원인이었다는 지적이다.
CNBC는 “웨스트민스터(영국 정가)에선 브렉시트라는 어마어마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팽배한 시기에 차기 총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다툼이 시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 대표.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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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은 메이 총리가 합의안에 대한 충분한 지지를 확보했다고 판단하면 오는 29일 승인투표를 개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BBC와 CNBC 등은 “메이 총리의 합의안이 이미 두 차례 거부 당했지만, 메이 총리는 세 번째 표결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앞서 EU는 메이 총리의 합의안이 수용되는 것을 전제로 5월22일까지 브렉시트를 늦춰주겠다고 밝혔다. 그렇지 않을 경우 4월12일 아무런 합의 없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된다.
이날 의향투표에서 4월12일 노딜 브렉시트 대안이 부결된 만큼 최악의 선택은 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영국이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하겠다고 결정한다면 시간을 조금 더 벌 수 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모든 변수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메이 총리가 사퇴 승부수를 띄운 만큼, 결국에는 합의안이 의회 벽을 넘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가장 큰 변수는 존 버커우 하원의장이 “같은 합의안을 재차 표결에 부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메이 총리 측은 지난주 EU 정상회의에서 안전장치(백스톱)와 관련해 추가 확약을 받아냈고, 브렉시트 시기도 연장된 만큼 추가 승인투표를 개최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연정 파트너로 과반 확보에 필요한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 민주연합당(DUP)이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걸림돌이다. 다만 기권시에는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 강경파 모임인 유럽연구단체(ERG)를 이끄는 제이콥 리스-모그 의원은 “DUP가 메이 총리의 합의안 승인 투표에서 기권해준다면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BBC는 “브렉시트 혼란의 끝은 여전히 멀다. 노딜 브렉시트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지만 대안이 없으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며 “메이 총리의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EU를 ‘어떻게’ 탈퇴할 것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또 다음 단계 협상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코너에 몰렸던 메이 총리는 사퇴 카드를 내밀자 호의적인 평가들이 나온다. 데이비드 먼델 스코틀랜드 담당 장관은 “그녀는 다시 한 번 사익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칭찬했다. 보수당 조지 프리먼 의원도 “그녀의 연설 중 최고의 연설이었다. 그녀는 훌륭한 품위를 보여줬다”고 거들었다.
메이 총리는 이날 구체적인 사퇴 시기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영국 언론들은 오는 6월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끝으로 사퇴할 것으로 내다봤다. 7월 중순 보수당 신임 대표가 선출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지만 가디언은 “더 일찍 총리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