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출신=사외이사' 공식 깨졌다…대표이사 꿰찼다

by김상윤 기자
2021.08.09 14:16:20

500대 기업 CEO 중 외부 출신 28%
외부출신 중 관료출신이 가장 많아
‘삼성 사관학교’ 자리 관료에게 내줘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국내 500 대기업의 대표이사 10명 중 3명이 외부에서 영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외부 출신 중에선 관료가 가장 많았다. 과거 관료들은 ‘거수기’로 불리는 사외이사에 주로 발탁됐으나 이제는 전문경영인(CEO)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많아진 셈이다.

9일 기업 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7월 말 기준 매출 상위 500대 기업 현직 CEO 650명 중 이력을 공개한 5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외부 CEO 영입은 167명으로 전체의 28.2%를 차지했다. 내부 승진은 323명으로 54.5%, 총수 일가 출신은 103명으로 17.4%였다.

외부 영입 CEO 비중은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총수 일가 출신 CEO 비율은 줄어드는 추세다. 외부 영입 CEO 비중은 2015년 7월 초 525명 중 120명으로 22.9%였지만 올해엔 28.2%로 치솟았다. 내부승진 CEO는 53.1%에서 54.5%로 1.4%포인트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반면 총수 일가 CEO 비율은 24.0%에서 17.4%로 6.6%포인트 감소했다. 총수일가는 주로 이사회 의장을 맡고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 CEO에게 맡기는 지배구조 형태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외부 영입 CEO의 경우 관료 출신(27명, 16.2%)이 가장 많았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대표 사관학교’로 불리는 범(凡) 삼성 출신은 2015년만 해도 비중이 15%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았지만, 올 7월에는 비중이 13.8%(15명)로 떨어졌다. 반면 관료 출신 비중은 2015년 10%에서 2020년 14.1%, 2021년 16.2%로 늘고 있다.



배두용 LG전자 대표이사 부사장
대표적인 관료 출신 CEO는 배두용 LG전자 대표이사 부사장(국세청 출신), 임병용 GS건설 대표이사 부회장(검찰 출신), 조석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대표(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 출신), 신명호 부영주택 대표(재정경제원 출신), 최원진 롯데손해보험 대표(재정경제부 출신), 고경모 유진투자증권 대표(기재부 출신) 등이 있다.

배 부사장은 국세청 출신이다. 국제조세통으로 탄탄대로가 보장된 관료였지만 2005년 실무경제에서 직접 뛰어보고 싶다며 LG전자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주로 해외법인관리, 세무통상담당 쪽을 담당하면서 통상, 관세업무를 맡았다.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리스크 관리에 나섰던 능력을 인정받았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기존에는 관료출신들이 주로 사외이사를 하면서 총수 일가 방패막이 역할을 했지만 최근 데이터를 보면 관료출신들이 대표이사 자리를 꿰차면서 능력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며 “관료출신들은 전문성과 함께 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총수의 신뢰를 받는 편”이라고 말했다.

여성 CEO는 2015년 6명에서 현재 13명(오너 일가 7명·전문경영인 6명)으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500대 기업 CEO의 출신 대학교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SKY) 비중이 46.9%로 2015년 47.5%에서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서울대 출신이 25.4%, 고려대 12.1%, 연세대 9.5%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