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목소리에 속지 마세요"…보이스피싱 '범죄의 재구성'
by김성훈 기자
2018.05.23 12:00:00
경찰·금감원, 보이스피싱 피해사례·유의사항 공개
저금리 '대출사기형', 檢·금감원 '기관사칭형' 대세
보이스피싱 예방 위해 ‘명심·관심·의심’ 기억해야
| 지난달 12일 서울 강북경찰서에서 안영길 경감이 수사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일당 8명 검거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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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지난해 12월 70대 남성 A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한 시중은행 지점장이라고 소개한 직원은 “A씨의 대리인을 사칭한 자가 예금을 찾으려다 도주했다”며 “경찰에 신고했으니 잠시 후 전화가 올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얼마 후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 속 남성은 “피해자 계좌의 예금이 인출될 우려가 있으니 금감원에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며 알려주는 계좌로 돈을 송금하라고 했다. 다급해진 A씨는 총 3회에 거쳐 2700만원을 해당 계좌에 입금했고 그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
경찰청과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실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사례에서 쓰이는 단계별 사기수법을 공개했다. 경찰과 금감원은 최근 들어 보이스피싱 발생건수가 급증한 상황에서 시민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보이스피싱 사기수법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경찰과 금감원이 이번에 공개한 수법은 경찰·검찰 등을 사칭한 ‘정부기관 사칭형’과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속이는 ‘대출빙자형’ 두 가지 유형이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정부기관 사칭형’ 사기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 △사기단 검거 △귀하 명의의 통장 발견 △자산보호조치 등이다.
정부기관 사칭형은 자신을 사정기관 관계자라며 소개하며 고압적인 말투로 접근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어 “귀하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가해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고립된 공간으로 유도해 제3자의 간섭이나 도움을 차단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한편 사이버수사대장이나 금감원 직원, 검사를 사칭한 조직원이 뒤이어 전화를 걸게 해 신뢰감을 높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계좌추적조회 결과 일정 금액 이상이 확인될 경우 불법자금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피해자의 금융자산 현황을 물은 후 자산이 충분하면 다음 단계로 진행하고 자산이 없으면 통화를 중단한다.
자산 규모 확인을 마친 후에는 수사관을 직접 만나 해당 금액을 확인해야 한다거나 경찰청(검찰청) 안전계좌로 금전 송금을 요구한다.
은행 창구를 방문할 때를 대비해 “은행 직원이 ‘이 돈을 왜 찾냐’는 질문을 할 이유가 없다”며 “은행 직원이 귀하의 업무를 방해할 경우 별 이상이 없다고 말하고 해당 직원의 직급과 이름을 얘기해달라”고 대응방법을 지시하기도 한다.
‘대출빙자형’ 사기는 △정부정책자금 △대출 승인 △저금리 △채무 한도 초과 △채무 상환 △당일 수령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자신을 금융사 직원으로 소개하고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며 접근한다.
피해자가 관심을 보이면 대출 상담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소득과 계좌정보, 금융거래 현황 등 개인정보 탈취를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대출 조건이 기준을 밑돌지만 ‘조건부 승인’으로 조정해 주겠다며 호의를 베푸는 척하기도 한다. 개인정보 유출 방지 등을 언급하며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일도 빼먹지 않는다.
이들은 기존 대출을 상환할 때 즉시 저금리 대출금을 받을 수 있다면서 예금 또는 대출을 받아 특정 계좌로 상환을 요구한다. 특히 피해금 인출에 필요한 시간 확보를 위해 입금 1~2일 후 최종 대출 승인이 가능하다고 하거나 추가 입금을 유도하기도 한다.
경찰과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피해 증가 요인으로 △범죄 수법 진화 △경각심 둔화 △인식과 현실의 차이 등을 꼽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앱 설치를 통한 스마트폰 해킹을 시도하는 등 범죄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과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명심·관심·의심’ 세 가지를 강조했다. 누구나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범죄수법이나 예방방법 등에 관심을 두는 한편 금융·사정기관에서 금전 거래를 요구하는 경우를 의심하라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이나 지인도 보이스피싱을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이 아닌 나의 문제’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모르는 상대방이 보낸 문자 메시지나 링크를 확인하면 악성 프로그램에 접속할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와 피해예방법은 전용 홈페이지(phishing-keeper.fs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