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강 작가가 작은 서점을 지키는 이유

by김미경 기자
2024.10.16 12:20:00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한때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날이면 고은 시인의 경기도 자택 앞에는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그러다가 불발로 끝이 나면 기자들은 서로 멋쩍어하며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우리는 그렇게 노벨문학상 콤플렉스에 시달려왔다.

한강(54)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개인의 문학적 성취를 뛰어넘는다. 동시대 작가들에겐 희망이자, 한국 문학의 위상과 국격을 높였다는 평가에는 지나침이 없다.

당장에 ‘한강 특수’는 위기의 출판 시장에 단비가 됐다. 한강의 주요 작품은 10일 수상 후 엿새 만에 100만 부 넘게 팔려나갔다. 작가 한 명의 전체 작품이 고르게 팔리며 엿새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한 건 한국출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작가 한강ⓒ백다흠.
한국 문학을 향한 해외의 시선도 달라졌다. 해외 출판사들의 러브콜도 늘어날 전망이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한국 문학이 주변부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세계인과 함께 쓰고 읽힐 시간”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수상이 개인의 신드롬으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선 번역 저변 확대와 출판 시장 확대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번역 출판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문학의 번역·출간을 지원해오고 있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올해 정부 예산은 전년 대비 14%(사업비 기준) 삭감된 상태다. 번역출판 지원 사업 예산 역시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올해 약 2억 원 오른 20억 원이다. 2024년도 출판산업 지원 예산도 429억 원으로, 전년대비 약 45억 원 줄었다.

K콘텐츠의 ‘원천’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정작 관련 예산은 줄거나, 원상복구의 되돌이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2의 한강을 만들겠다며 부랴부랴 2025년 번역 지원 예산을 늘리고 사업 점검에 나섰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좋은 정책은 현장의 신뢰와 일관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 한강은 서울 서촌에서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동네 서점이 그렇듯 적자를 면치 못한다. 그럼에도 지속하는 이유는 책의 다양성을 지켜내고, 책을 통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시선과 인간의 연약함을 보듬을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하고 보유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 정부는 언제까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을 텐가.

13일 오후 임시 휴업중인 서울 종로구 ‘책방오늘’ 앞에서 한 외국인이 사진을 찍고 있다. 책방오늘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운영하는 한강이 운영하는 3평 남짓 작은 독립서점이다. (사진=뉴시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