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맞으면 뭐해"…4단계 연장, 연장에 고통은 시민들 몫

by김대연 기자
2021.08.09 14:12:24

'길고 굵은' 방역지침…수도권 4단계 6주째 적용
"백신 소용없을 듯"…방역 피로감 쌓이는 시민들
심야 불법영업·선상 파티 줄줄이 적발…꼼수 증가
"지금 4단계는 강도 약해…과거 2~2.5단계 수준"

[이데일리 김대연 기자] “백신 예약하면 뭐해요. 지금 4단계인데도 확진자가 계속 1000명 넘게 나오는 것 보니 소용없을 것 같아요.”

정부의 잇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연장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각종 부작용을 감수하고 백신 접종 사전예약을 하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소용없을 것 같다며 망설이는 이들도 대다수다. 4차 대유행 속 심야 불법영업과 대규모 선상 파티도 끊임없이 적발되자 정부의 방역지침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행정처분이 약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한 예방접종센터에서 한 시민이 백신을 맞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국내 신규 코로나19 확진자는 1492명으로 일요일 기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34일째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대전에 이어 부산까지 확산세가 거센 비수도권 일부 지역은 거리두기를 4단계로 격상하기로 했다. 특히 여름 휴가철을 맞이해 전국 이동량이 대폭 늘어난 상황에서 이번 주 광복절 연휴까지 앞두고 있어 추가 확산 우려마저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6주째 거리두기 최고단계 시행에 지친 시민들의 반응은 다소 회의적이다. 9일부터 18~49세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예방접종 사전예약이 시작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보다 벼랑 끝에 내몰려 마지못해 신청한다는 입장이다.

10월 9일생이라 오늘 백신 예약신청을 한다는 대전시 주민 강모(24·여)씨는 “사실 백신을 맞아도 델타 변이 때문에 너무 걱정된다”면서 “나름대로 방역지침을 잘 준수하고 있는데 대전시 확진자가 꾸준히 많이 나와서 잘하고 있는지 판단이 잘 안 된다”고 털어놨다. 경북 울진군에 거주하는 장모(25·여)씨도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많이 봐서 겁이 났고 고민도 많이 했다”며 “델타 변이 때문에 백신을 맞아도 소용없을 것 같은데 다들 맞으니까 예약해야 할 듯 싶다”고 밝혔다.

정부의 ‘짧고 굵은’ 방역지침이 4차 대유행 확산세를 꺾지 못하자 이를 강하게 질책하는 이들도 많았다. 코로나19 상황이 올해 끝나기는 글렀다고 강조한 김모(31·남)씨는 “계속 변이 바이러스가 나오는 마당에 백신도 큰 소용이 없는 것 같다”며 “백신도 없어서 매일 잔여 백신 알람만 기다리는데 치료제나 빨리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김모(24·여)씨도 “부모님께서 권하지만 않으면 효과도 없을 것 같은 백신을 굳이 맞고 싶지 않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방역수칙도 무의미하고 코로나19와 영원히 공생해야 할 것 같다”고 자조 섞인 비판을 했다.

서울시는 한강 선상 카페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루프탑 파티’를 벌인 손님 50여명 등을 감염병예방법·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적발했다고 8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장기화 사태에 피로감이 누적된 시민들이 거리두기 최고단계 시행에도 확산세가 왜 잠잠해지지 않냐며 연일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강 선상 카페에서 50여명의 손님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로 춤을 추고 술판을 벌여 적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심야에 몰래 불법영업을 하는 업소들과 ‘노마스크’ 파티 등이 꾸준히 기승을 부리자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낮은 행정처분 때문에 시민들이 방역 위반에 대해 더욱 경각심을 느끼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최대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와 같이 행정적 제재가 약하다보니 업주들이 불법인 걸 알면서도 영업을 강행하는 것”이라며 “이들이 심리적으로 ‘절대 운영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무기한 영업 정지 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현 거리두기 4단계는 최고단계라고 해도 과거의 2~2.5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어 시민들이 체감하는 것과 정부의 정책이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4단계가 고강도 최고단계라고 하지만 다중이용시설도 열리고 공적 모임도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의 2.5단계보다 약하다”며 “현재 백신 접종 완료율이 15%이라 85%의 국민이 델타 변이에 노출된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파레토 법칙’처럼 일부가 잘못할 뿐 대부분 국민은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있다”며 “정부는 병원을 전전하며 고생하는 민생을 살피고 새로운 거리두기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도 “지금 거리두기 강도가 약해서 4단계 조치인데도 유행 억제에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라며 “거리두기 조치에 따라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 등의 상황을 먼저 고려하고 강도를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천 교수 역시 “최소한 백신 3차 접종률이 50%가 넘을 때까지는 ‘재택근무, 6시 이후 배달·포장만 가능’ 등 델타 변이를 고려한 강제성 있는 고강도 방역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