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페이고법…3년 가까이 법안 방치한 새누리

by김정남 기자
2015.05.14 15:34:01

與, 공개석상서 페이고법 강조하면서 심사때 소극적
政 예산편성권 독점하는 현실상 삼권분립 위배 지적
野 반발도 변수…"이번에도 반짝했다가 사그라들듯"

새누리당 원내대표 때부터 페이고법 처리를 강조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이데일리DB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박근혜정부 들어 ‘페이고(Pay Go)’ 원칙은 수차례 강조돼왔다. 특히 국회의원이 예산을 수반하는 법안을 발의할 때도 그에 상응하는 재원마련 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페이고법은 여권의 단골 중점법안이었다. 박 대통령이 전날 처리를 강조한 것도 그리 이례적이진 않다.

다만 페이고법이 3년 가까이 통과되지 않은 건 다 이유가 있다. 새누리당이 공개적으로 입법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법안심사 때는 소극적이었다는 게 큰 이유다. 예산편성권을 정부가 독점하는 우리나라 현실상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도 한몫했다. 이번 역시 말로만 반짝 했다가 사그라들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14일 국회에 따르면 대표적인 페이고법으로 꼽히는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의 국회법 개정안은 지난 2012년 10월 발의된 이후 3년째 표류하고 있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이 낸 국회법 개정안(2013년 11월 발의)도 장기표류 모드다. 두 법안은 지난해 4월16일 소관 상임위인 국회 운영위원회 산하 국회운영제도개선소위원회에서 한차례 논의됐을 뿐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이만우 의원안은 예산을 써야하는 법안을 낼 때 다른 예산을 줄이거나 쓴만큼 증가시키는 법안도 발의하자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복지 예산을 늘리자고 하면,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그만큼 세금을 걷는 법안도 내자는 것이다. 이노근 의원안은 약간 다르다. 예산 소요 법안을 내면서 재원조달추계서 첨부를 의무화하자는 게 뼈대다.

하지만 두 법안은 그 현실성부터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이만우 의원안이 그렇다. 현재 국회에는 각 상임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있긴 하지만 모든 법안을 일일이 검토하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노근 의원안도 마찬가지다. 의원들의 법안 발의를 돕는 국회 입법조사처·예산정책처 등의 인프라와 역량에 한계가 있어서다. 최근 10년 국회에 배정된 예산은 전체의 0.0016~0.0020% 수준에 불과하다. 국회 한 관계자는 “재정건전성에 대한 고민은 공감하지만 그 실행방안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입법 의지도 높지 않다는 관측이다. 페이고법을 주창해온 이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다. 지난해 초 당 원내대표일 당시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와 함께 였다. 다만 정작 지난해 4월16일 소위 심사가 진행되니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 국회운영제도개선소위원장이었던 윤상현 의원은 당시 “어떤 방안은 만들 필요성은 있는데 현 상태에서 할 수는 없으니 넘어가자”고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당장 페이고법 논의에 탄력을 받으려면 법안 자체를 더 손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의원들이 예산심의권만 있다는 점도 페이고법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의원들이 법안을 낼 때 기획재정부 예산실에 목을 맬 수 밖에 없고, 이러면 자연 국회가 정부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페이고 원칙을 입법에 적용하는 미국의 경우 의회가 예산편성권을 갖는다.

야당이 페이고법을 반대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페이고 제도는 미국의 예산시스템에 적합한 재정준칙의 하나”라면서 “현 단계에서 재정을 수반하는 모든 의원입법에 의무화하는 것은 입법권을 과도하게 통제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국가부채 총량을 일정수준에서 묶어두는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더 현실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를테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전년도보다 낮게 유지되도록 법으로 강제해 무분별한 확대재정을 막자는 것이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총량을 규제하는 방향은 논의해볼 만하다”면서도 “다만 이 역시 규제하는 게 의회에 집중되면 삼권분립을 무력화할 수 있는 우려는 있다”고 했다.

이런 내용의 법안은 지난 2013년 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낸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그동안 한 번도 심사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