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유화학업계 덮친 안전사고 공포

by남궁민관 기자
2018.06.01 12:56:38

지난 29일 폭발로 추정되는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대전 유성구 외삼동의 한화 화약공장 정문으로 119 구급대 차량이 빠져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가 잇딴 안전사고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단순 작업 도중의 가스 누출 및 추락 사고는 물론 폭발과 화재에 따른 인명피해까지 연이어 발생하면서 안전불감증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해당 사업장의 가동중단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손실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정유·석유화학업체들은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안전사고에 시름하고 있다. 당장 지난달 29일 16시10분경 ㈜한화(000880) 대전사업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구체적인 사고 원인은 파악 중이지만, 로켓 추진 용기에 추진제를 충전하던 중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직원 3명이 사망했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바로 하루전날인 28일에는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 E1(017940)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공장에서는 증설공사가 이뤄지고 있었으며, LPG저장탱크에서 작업을 하던 하청 직원 1명이 발판을 이설하던 중 추락해 사망했다.

가스 또는 화학물질이 유출되는 사고 역시 근래 여러차례 발생했다. 지난 17일 오전 울산 한화케미칼(009830) 2공장 CPVC생산라인에서 CPVC 생산에 필요한 염소가스를 탱크로리에서 보관탱크로 이송 중 배관에서 누출이 발생한 것. 현장 직원들은 사고 발생 후 긴급 대피를 완료해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일부 10여명의 직원들이 바람을 타고 불어온 가스를 흡입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 21일에는 에쓰오일(S-0IL) 윤활기유 공장에서 용접한 배관 밸브에서 수소가 누출, 화재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SK머티리얼즈(036490) 본사가 있는 경북 영주 공장에서 배관단절로 인한 WF6(육불화텅스텐) 누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 롯데케미칼(011170) 대산 BTX공장의 경우 1월 발암물질인 벤젠이 5t(톤) 가량 누출되는 사고가 난 데 이어 4월 초 단순 화재 사고까지 발생했다.



연이어 안전사고가 발생하자 각 업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고 직후 해당 사업장의 가동중지에 따른 손실은 당연한 수순. ㈜한화와 한화케미칼은 현재 사고가 난 사업장의 가동을 중단한 상태이며, E1 역시 증설 작업을 중단했다. SK머티리얼즈는 가동을 중단했다가 5월 11일 테스트 가동을 시작해 30일 상업생산을 재개했다.

무엇보다 인명피해 또는 유독물질 누출에 따른 2차 피해 발생 가능성 등으로 각 업체들을 향한 안전불감증에 대한 비난은 피할 길이 없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 안전관리 체계는 어느 업종과 비교해도 최고의 수준을 갖추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사고가 발생했다면 모두 핑계처럼 돼 버린다”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빈번한 안전사고 발생에는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원인이 존재한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라 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기 전 300번의 징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안전불감증 등 인식 개선은 당연한 지적이다. 특히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원·하청 관계없이 관리체계 및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나온다. 다른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정유와 석유화학업계는 장치 산업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생산 과정에서 사고가 나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정비·보수 및 증설 작업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며 “때문에 사고가 나면 이를 전담하는 하청 직원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즉 원청의 하청 직원들에 대한 안전 교육 및 작업 관리가 중요 과제로 떠오른다. 하청업체의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권한을 가진 원청이 안전에 대해 강한 책임을 져야 하청의 안전관리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1월 산소공장에서 4명의 외주 직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포스코의 경우 하청 직원들의 안전 교육 및 작업 관리를 원청에서 직접 책임지기 위해 안전보건전문가 등 안전 전담인력 200여명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 정유·석유화학 기업들이 주로 위치한 울산과 대산의 노후 설비들에 대한 대대적 점검도 필요한 대목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울산과 대산 등 주요 산업단지는 1970년대 지어진 노후설비들이 많은데 대기업들은 그나마 꾸준히 정비해왔지만 중소·중견업체들은 방치된 경우가 많다”며 “안전점검과 관련 인력과 비용 등 다양한 지원책들도 고려해볼 만 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