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의 국경은 없다]② 중고 마을버스 찾아 삼만 리

by트립in팀 기자
2018.04.09 11:21:42



[이데일리 트립in 임택 여행작가] 마을버스의 인생을 마친 은퇴한 마을버스를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원이나 일반 회사에서 사용한 버스는 10년이 되어도 15만 km 정도 운행을 해서 쌩쌩하다. 마을버스는 10년을 밤낮으로 운행한 탓에 차의 상태가 아주 나빴다. 그러니 폐차가 되거나 다른 나라도 팔려나가는 것이 마을버스의 운명이다.

그나마도 폐차를 앞둔 마을버스를 찾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고차 수출업자들이 회사에 미리 돈을 주고 운행이 끝나기 무섭게 가져가니 중고시장에 나올 턱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인터넷에도 중고 마을버스에 대한 정보가 없어 결국 마을버스 회사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했다. 일하는 시간에 짬을 내서 하는 일이라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온통 마을버스 생각뿐이었다. 마을버스를 탈 기회가 생기면 운전석 옆에 서서 버스 기사의 운전 기술을 어깨너머로 익혔다. 의자에 앉아 쉴 때도 신발을 뒤집어 놓은 다음, 신발 위에 양쪽 발을 얹어 놓고 클러치와 브레이크 밟는 연습을 했다. 버스가 수동기어여서 빗자루를 잡고 기아 변환 연습도 했다. 어쩌다가 자동기어인 나의 승용차를 몰때도 수동으로 착각하여 운행 중에 후진 기어를 넣은 경우도 있었다. 자동차 운전에서도 정체성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평구에 있는 어떤 마을버스 운송회사를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넓은 주차장에는 운행 순서를 기다리는 마을버스들이 가지런히 서 있었다. 마을버스를 보자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대기하고 있던 이 마을버스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이리저리 핸들을 돌려보기도 하고 클러치를 밟으며 스틱을 아래위로 움직여보았다.

‘아니,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때 회사 직원이 달려 나와 내 팔을 잡고 거칠게 끌어내렸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나는 사무실로 끌려가다시피 들어갔다. 직원은 바로 경찰을 불러들일 기세였다. 내가 실수로 차에 올라탄 것을 거듭 사과하며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평소 나의 여행 이야기는 얼마나 중얼거리고 다녔는지 마치 기도문처럼 암송할 정도였다. 큰 소란이 일어서인지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와 직원들이 모여들었다. 무료하고 평범한 일상 속의 그들에게는 희한한 볼거리였을 것이다.

나는 직원에게 여행을 함께할 마을버스 한 대를 사야 하는데, 혹시 이 회사에 곧 폐차하는 버스가 있으면 사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은 황당해하면서도 즐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 사장! 거기 마을버스 폐차되는 거 하나 없어? 없다고?”

“갑자기 폐차되는 버스는 왜 찾냐고?”

“어! 여기 어떤 미친 사람이 마을버스 타고 세계를 돈대, 하하하.”

나를 차에서 끌어 내렸던 회사 직원이 이 회사 저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하나같이 자기네 회사는 25인승 마을버스만 운행해서 정작 내가 필요로 하는 15인승은 없다고 했다. 대신 자기가 아는 회사가 있으니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옥수 교통에 곧 폐차될 차가 있다니 한번 가보세요.”

옥수 교통은 정릉에 있는 소형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회사였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정릉터널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만 회사였다. 회사에 도착하니 사장은 없고 정비사만 있었다. 이 회사는 운송회사와 주차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주차된 큰 버스들 사이에 있어서인지 ‘옥수 교통’이라 쓰인 푸른색 마을버스는 매우 왜소해 보였다(만일 이곳에서 버스를 샀다면 마을버스의 이름은 ‘옥수’가 되었을 것이다).

인연이 없어서일까? 몇 번을 찾아가도 옥수 교통의 사장을 만날 수가 없었다. 전화하면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550만 원에 준다던 중고버스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650만 원이 되더니 결국 850만 원까지 치솟았다. 정부에서 주는 〈조기 폐차 보상금〉 350만 원을 합치면 구입가가 1,200만 원을 넘게 된다. 점점 고민이 깊어져 갔다. 버스 상태도 점검하지 않은 상황에서 덜컥 계약금만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직 사장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 얼굴도 보지도 못했다. 또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의 ‘발품 팔이’가 다시 시작됐다.

얼마나 싸돌아다녔는지, 근처의 마을버스 사장 중에 나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떤 이는 여행이 멋지다며 밥을 사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손수 커피를 타주거나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당분간 폐차 계획이 없다거나 이미 수출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을버스는 좀처럼 구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더니, 이렇게 많은 마을버스 중에 내게로 올 중고 마을버스가 정말 한 대도 없는 걸까?’

“자기 요즘 왜 이렇게 바빠? 얼굴을 통 못 보겠네?”



요즘 중고 마을버스를 사기 위해 밤낮을 헤매고 다니는 나에게 아내가 물었다.

“응, 중고 마을버스 사러 다니는데 아무리 다녀도 없네?”

“그래서 그렇게 바빴어? 그럼 나한테 말을 하지.”

“뭐 좋은 수가 있어?”

“내가 잘 아는 언니 남편이 마을버스 회사 하잖아. 거기에다 부탁해볼게. 은수교통이라고 서울대학교병원을 오가는 셔틀버스야. 종로 12번 은수교통.”

아내는 그 언니라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혹시 형부 회사에서 중고버스 좀 살 수 있을까?”

“운행 8개월인가? 남은 게 있긴 할 거야. 그런데 수출업자가 이미 돈 주고 기다리고 있을걸? 어떨지 모르겠네? 근데 왜?”

“그래도 한번 물어봐 줘. 남편이 그거 끌고 세계 일주 간 데.”

“뭐? 세계 일주? 와! 그거 멋지다. 근데 자기도 허락했어?”

아내 말에 따르면 그 선배는 그림 그리는 화가란다. 예술가라 생각이 남다른 건지, 나의 이 엉뚱한 계획을 듣고는 멋지다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가끔 이런 사람도 있으니 살맛이 나는가 보다.

“이렇게 멋진 일에 쓰는 건데, 내가 그 수출업자와 계약 취소하라고 할게. 걱정 마!”

아내라는 존재는 적어도 남편에 관한 한 ‘갑’이다. 약속대로 그 선배는 미리 돈을 치른 수출업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를 나한테 내주도록 남편에게 ‘갑질’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은수가 운행을 마치는 6개월을 기다릴 수 없었다. 은수교통은 남은 기간의 운행이익을 포기하기 어려웠다. 마을버스는 새 차를 신청하면 6개월 이상이 걸려야 인도받는다. 그때까지 기다리면 또 한 해를 넘겨야 한다. 겨울을 피하려는 여행일정과도 어긋난다.



“한번 자동차 회사에 가서 사정을 해 보지 그래요?“

은수교통사장이 답답했는지 네게 제안을 했다.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나는 현대자동차를 찾아가 이 멋지고 가슴 떨리는 여행에 대해 설명했다.

나의 이야기는 바로 당신들의 이야기이고 꿈이며 현대의 자랑이라고 설명했다. 담당자는 상부에 보고하겠다며 나를 돌려보냈다. 바로 다음날 연락이 왔다.

”특별히 다음 달에 새 차를 배차토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선물이 함께 따라왔다.

”그리고 저희들의 해외 정비시스템을 활용해서 여행을 마칠 때까지 정비 서비스를 무료로 지원하겠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눈물이 쏟아졌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현대자동차는 2개월이 되지 않아 은수교통에 신차를 배정했다. ‘은수’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마을버스는 퇴직 6개월을 남기고 조기 은퇴했다. 나이 50에 여행작가를 선언한 나처럼.

이렇게 마을버스 은수가 나에게로 왔다. 9년 6개월을 밤낮으로 운행하고 6개월 뒤 규정상 폐차를 해야 하는 낡은 차다. 어찌 보면 조기 은퇴를 하게 된 차여서 ‘인생 재도전’이라는 우리 여행의 의미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종로 일대에서 서울대학병원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일생을 보낸 차였다. 수많은 애환을 싣고 달렸을 마을버스와 함께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자동차만 구매했다고 해서 당장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함께 떠날 여행자를 구하지 못했다. 이 멀고도 험난한 여행을 홀로 떠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