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韓디자이너 최초 이세탄 신주쿠 진출..아직 갈 길이 멀다"

by김혜미 기자
2015.12.15 14:34:36

''유나 양 콜렉션''의 양유나 대표 인터뷰
뉴욕에서 출발해 한국·대만·일본으로 진출
"''한번만 더'' 정신이 원동력..포기는 금물"

[뉴욕= 이데일리 김혜미 특파원] “뉴욕에 온 지 8개월 만에 아무 기반도 없이 무작정 데뷔쇼를 치렀어요. 한 번 질러보자, 해보고 안되면 접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를 이야기하면 모두 제가 미쳤다며 황당해해요.”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패션업체 유나 양(Yuna Yang)컬렉션의 양유나(37) 대표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도전했지만 첫 패션쇼가 뉴욕 패션계에서 크게 주목받았고 매년 30~40%씩 매출이 성장해 기쁘다”면서도 “디자인은 점점 더 어렵고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한 적도, 성공을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겸손히 말했다.

세계적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이탈리아 마랑고니 패션스쿨과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출신인 그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리마 클라세 알비에로 마르티니에서 디자이너로 사회 첫발을 디뎠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양 대표는 뉴욕에서 ‘주목받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양 대표가 데뷔 무대인 지난 2010년 가을/겨울 시즌 패션쇼에 등장한 후 패션 일간지 우먼스 웨어 데일리(Womens Wear Daily)는 그를 ‘확실한 승자(a sure winner)’라고 지칭하며 두 시즌 연속 커버 스토리로 다뤘다. 또한 뉴욕 매거진은 그를 ‘주목할 만한 9명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양 대표는 현재 뉴욕 외에도 한국과 대만, 일본에 진출하는 등 활동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올해로 뉴욕에서 10번째 패션쇼를 치른 양 대표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영화 배급업체 20세기 폭스사와의 ’워터 포 엘리펀트‘(Water for Elephants) 콜라보레이션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20세기 폭스의 마케팅 부사장은 할리우드 스타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디자이너를 물색하던 중이었고 양 대표의 의상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그가 양 대표 쇼룸으로 찾아오면서 우연이 인연으로 바뀌었고 양 대표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이뤄졌다.

“20세기 폭스 부사장이 의상을 구입하러 왔다가 다짜고짜 경력이 어떻게 되는지, 영감을 어디서 받는지 등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더라고요. 그러다 리즈 위더스푼 사진을 보여주며 올 하반기 캡슐 콜렉션 홍보 활동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분도 저도 모험을 했던 거죠.”

20세기 폭스와의 콜라보는 대성공이었다. 그의 첫 패션쇼 컨셉이었던 1920년대 스타일이 영화와 맞아 떨어졌고 그 결과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인연은 대 감독 조지 루카스가 제작한 ‘레드 테일스’(Red Tails) 콜라보레이션으로도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것은 양 대표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기 직전이 그에게는 가장 가혹한 시기였다는 점이다. 초기 두 차례의 패션쇼가 각종 패션지와 업계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승승장구 할 줄 알았지만 세 번째 패션쇼는 그야말로 가혹한 평가를 받았다.

양 대표는 그 때를 ‘바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컨셉을 잘 읽어내지 못하고 너무 자만했던 것 같다”라며 “처음 평가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저 뉴욕 패션계가 신인 디자이너에게 굉장히 관대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뿐 좋은 평가가 얼마나 이례적인 것인지 몰랐다”고 밝혔다.

그는 세번째 패션쇼에서 가차없이 ’매력을 잃었다‘는 등의 평가를 받았고 무반응과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 때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양 대표는 “그 때 실패를 경험한 것이 잘 된 일”이라며 “만일 지금 그처럼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면 브랜드를 지속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양 대표는 트렌드를 좇기 보다는 주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한 예로 그는 매년 국제유행색협회(ICA) 인터컬러가 발표하는 유행색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20개 의상을 제작하면 시장성을 위해 유행색이 반영된 의상은 한 두 벌 정도에 불과하다”며 “너무 유행을 따르다보면 대중적인 의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유나 양 컬렉션의 시그니처(특징)은 단연 레이스다. 레이스는 섬세하고 화려한 만큼 다루기가 쉽지 않지만 양 대표는 레이스를 잘 다루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그는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 웨딩드레스에 사용된 것처럼 여러 색상이 섞인 코딩 레이스를 사용한다. 레이스는 이제 그의 의상을 표현할 때 꼭 따라다니는 특징이 됐다.

양 대표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서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인지 컨셉이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면서 “레이스는 화려하지만 컷이나 컨셉이 대담해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인 두 가지 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래서 너무 소녀스럽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설명했다.

유나 양 컬렉션은 30대 중반을 타깃으로 한 하이엔드 의상을 표방한다. 실제로는 가격대가 있는 만큼 40~60대가 주요 고객층으로 형성돼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원피스 드레스의 평균 가격은 약 800~2500달러(약 95만~295만원)이며 그 중에서 1500~1800달러(177만~213만원)대 의상이 주로 판매된다.

양 대표는 브랜드 가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어느 한 상품이 큰 인기를 끌면 판매를 일부러 중단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브랜드를 10년 이상 키울 것이기 때문에 빨리 큰 인기를 끄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며 “남들이 보기엔 느려보여도 꾸준히 천천히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이세탄 살로네에 전시된 유나양 컬렉션의 헤어 액세서리 제품들.(유나양 컬렉션 제공)
유나 양 컬렉션은 한국에선 롯데 애비뉴엘과 센텀시티, 대만은 신공 미츠코시에 입점해 있으며 최근에는 일본 패션의 중심지인 이세탄 신주쿠와 살로네에도 진출했다. 이세탄 신주쿠와 살로네는 현재 일본 고객들만을 위해 제작한 액세서리만 선보인다. 본래 11월18일부터 12월4일까지 팝업 스토어 형태로 운영했다가 고객 반응이 좋아 1월 초까지 연장한 상태다. 이곳의 제품은 가격이 200~400달러 정도로 비싸지만 헤드셋 귀마개 등 일부 제품은 일찌감치 품절됐다. 내년 2월에는 이세탄 자체 신발브랜드인 ’No.21‘과 콜라보레이션을, 3월에는 의류를 공급할 계획이다.

양 대표는 “내년에는 일본 시장에 자리잡는 일에 주력할 계획”이라면서 “실제로 일본에 가보니 경기가 활발하게 살아나고 있다는 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일본 상류층들이 내 이름을 보고 상표를 보고, 내 옷을 보길 원한다. 지금처럼 한 단계씩 천천히 성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양 대표가 이탈리아에서 패션스쿨을 졸업하고 명품 브랜드 프리마 클라세 엔트리 디자이너로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신조로 삼은 것은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정신이었다. 일본 이세탄에 진출할 때도 영업 계획이 6개월 전에 마감돼 올해 안에 입점이 어려울 것이란 에이전트 조언을 들었지만 결국 성사시킬 수 있었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 줄 조언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양 대표는 “나 역시도 내성적인 면이 있고 남에게 싫은 소리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누가 하고 싶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하지만 항상 스스로 ‘한번만 더 해보자’고 되뇌는 게 중요하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지면 기회는 다시 오고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1978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2001년 어학연수를 위해 이탈리아로 향했다. 명품 발렌티노 재봉사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이탈리아 마랑고니 패션스쿨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뒤 프리마 클라세 알비에로 마르티니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다. 2006년에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센트럴세인트마틴스 예술대학에서 여성복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9년 뉴욕에서 유나 양 컬렉션을 론칭했다. 그의 의상은 캐리 언더우드, 켄달 제너 등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