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붕괴 사고서 인부 극적 소생시킨 소방관[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⑬
by이연호 기자
2024.02.02 16:23:12
경기 평택소방서 최수원 소방관, 2022년 10월 공사장 건물 붕괴 신고 받고 출동
머리 다량 혈액·전신 다발성 출혈 및 타박상·골반 골절 환자, 신속 처치로 살려 내
"인명구조사 자격 도전할 것…순직 소방관 열정적 마음 이어받겠다"
[편집자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가량 숨 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지난해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연재한다.
| 최수원 소방관(안쪽에 마스크 쓰고 무릎 꿇은 사람) 지난해 3월 17일 한 볼링장에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자 출동해 의료 지도하에 환자의 정맥로를 확보 중인 모습. 사진=최수원 소방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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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지난 2022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경기도 평택소방서 최수원(30) 소방관은 인근 안성시 한 공사장에서 건물이 붕괴됐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급히 출동했다. 공사장 건물 4층 바닥 시멘트 타설 중 거푸집이 무너져 인부 5명이 3층으로 떨어졌다는 신고였다.
당시 소방에 입직한 지 만 1년 5개월 남짓 된 최 소방관은 이동 중 추가 붕괴 가능성이 있단 말에 약간의 공포심이 들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5명 중 한 명은 이미 선착한 구급 대원이 심폐소생술을 진행 중이었고, 구조 대원들은 건물 잔해에 매몰된 3명의 환자를 찾고 있었다.
최 소방관은 도착 직후 선착한 구급대로부터 나머지 환자 1명을 인계받았다. 환자는 안전 헬멧을 쓴 상태로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있었다. 헬멧과 머리 사이로 다량의 혈액이 흐르고 있었고 시멘트로 얼룩진 전신이 피투성이었다. 최 소방관은 환자가 의식이 없자 주먹으로 환자의 명치 아래 흉골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환자가 약한 신음 소리를 내며 반응을 보였다.
최 소방관은 환자의 헬멧을 벗기고 환자의 목에 경추 보호대를 댔다. 이어 피가 흐르는 머리를 생리식염수를 묻힌 멀건 거즈로 소독하고 압박붕대를 이용해 지혈했다. 최 소방관은 그 당시에 대해 “층고가 높아 한 층고에 보통 건물 3~4층 높이 정도는 돼 보였다. 충격이 클 수 밖에 없었다”며 “3층 시멘트 바닥에 떨어질 때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면서 헬멧 내부의 머리를 고정하는 플라스틱 부분이 측두부와 후두부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고 회고했다.
최 소방관은 환자가 강한 통증에만 반응을 보이는 중증 외상 기준에 해당하자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에 전화를 걸어 의료 지도를 받기로 했다. 최 소방관은 의료진의 지도하에 골절로 추정되는 환자의 골반 기저부를 고정하고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자 정맥로 확보 후 생리식염수를 투여했다.
이후 외상이 심한 곳은 부목을 고정하고 추가적인 출혈 부위에 지혈 압박 드레싱을 실시했다. 최 소방관은 “당시 환자는 골절로 추정되는 왼쪽 골반 기저부가 틀어져 있었고, 전신에 다발성 출혈과 찰과상 및 타박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 소방관에게 환자를 응급 처치할 때, 출동 시 느꼈던 공포심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최 소방관은 “이동 중엔 추가 건물 붕괴 가능성에 좀 무서웠던 것이 사실인데, 현장 도착했을 때 너무 아수라장이기도 했고 환자를 바로 받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겨를 없이 바빴다”고 말했다. 최 소방관의 빠른 응급 처치와 신속한 이송으로 다행히 환자는 나중에 걸어서 퇴원했다. 결국 최 소방관은 중증 외상 응급 처치에 대한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중증 외상 환자에 대한 적절한 처치로 생명을 살린 소방관 등에게 주어지는 인증서인 ‘트라우마 세이버(Trauma Saver)’를 받았다.
| 지난 2022년 9월 29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로에서 외상성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자 출동해 구급 대원들이 심폐소생술 등 응급 처치를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흰색 헬멧 착용한 대원이 최수원 소방관. 사진=최수원 소방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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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 대원으로서 4년 차를 맞는 최 소방관에게 가장 힘든 때는 언제냐고 질문했다. 그는 “자살 신고를 받고 출동할 때, 그분들의 유서 등을 통해 스토리를 접하게 되면 감정 이입이 돼 힘들다”며 “그렇지만 구조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장 위험하거나 힘든 순간 처음 마주하는 사람이 구급 대원인 만큼 자긍심을 갖고 현장 활동에 임하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최 소방관은 인명구조사 자격증을 딸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구급 대원이지만 소방관인 만큼 화재나 구조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틈틈이 체력을 기르고 있고, 올해나 내년엔 인명구조사 자격을 취득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 소방관은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 육가공업체 화재 발생 당시 구조 활동 중 순직한 문경소방서 소속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박수훈 소방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도 드러냈다. 최 소방관은 “순직하신 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고 열정적이었던 마음 이어받겠습니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안한 곳 가셔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현장 대원들,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이지만 부디 안전하게 현장 활동 하십시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