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정훈 기자
2017.04.26 11:17:25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어느덧 백악관 주인 자리를 꿰찬지 100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동안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지만 “우리의 일자리와 국경, 부(富), 그리고 우리의 꿈을 다시 찾아오겠다”며 꺼내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기치는 여전히 그의 손에 꼭 쥐어져 있다.
취임전부터 이후까지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 인텔, 엑손모빌 등 미국 기업은 물론이고 도요타와 혼다, 삼성전자, LG전자, 폭스콘 등 전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공장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도록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멕시코 등 미국에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떠안긴 국가들도 윽박질러 시장 개방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바이 아메리칸, 하이어 아메리칸(Buy American Hire American)`이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 정부와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미국내 인프라 건설회사들에게 미국산 제품 구입을 의무화했다. 인도와 중국, 한국인들의 전문직 비자(H-1B) 발급도 까다롭게 해 미국인 고용을 늘리도록 압박하고 있다. 곧 공개할 세제 개편안에서도 국경조정세를 도입해 미국산 제품을 해외로 수출할 때에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대신 해외에서 만들어 미국에 들여오는 제품엔 고율의 국경조정세를 매길 태세다.
사실 트럼프노믹스는 낯설지 않다. 과거 1970년대초 리처드 닉슨이나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1990년대초 조지 H.W. 부시 등 선배들이 이미 한 차례씩 시도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미국`을 원했던 닉슨과 부시는 베트남전쟁과 걸프전쟁이라는 대외 전쟁에 참전해 미국의 힘을 만방에 과시했지만 그로 인한 무역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 확대, 달러화 가치 하락, 미국경제 침체 등 쓴맛을 본 뒤 민주당에 패해 연임 못한 몇 안되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레이건 역시 복지예산을 깎고 기업 감세를 늘렸고 냉전을 부활시키면서 국방예산을 대대적으로 늘렸지만 돌아온 건 세계 최대 채무국이라는 오명이었다. 그나마 우루과의 라운드라는 새로운 자유무역 질서를 수립하고 러시아와의 군축협정 체결 등 자기 노선을 정반대로 되돌리는 자기 부정을 통해 4년 임기를 연장할 수 있었다.
이미 전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시대에 미국의 이익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극대화하겠다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스텝을 꼬이게 만들 수 밖에 없다. 미국산 제품을 더 팔고 수출기업에 세금 면제라는 사실상 보조금을 준다면 무역수지가 개선되고 있는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 향후 수출경기를 악화시킨다. 상대국의 무역보복을 낳아 미국기업 경영을 어렵게 할 수 있다. 국경조정세 도입으로 수입물가가 올라가면 인플레이션이 유발돼 달러는 더 강해지고 가계 소비도 위축된다.
이런 트럼프노믹스의 비극적 결말은 이미 닉슨과 레이건, 부시를 통해서도 예견할 수 있다. 이는 우리와 같은 주변국들에게도 비극이 된다. 내줘야할 부분은 양보하면서 서서히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다. 미국산(産) 제품 수입 및 대미 투자 확대, 방위비 분담 등을 압박하는 트럼프에게 할 말은 해야 한다거나 반대논리로 설득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심심찮게 들린다. 듣기엔 그럴싸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대해 속시원한 얘길 내놓지 않는 우리 대권 유력주자들은 얼마나 각오가 돼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