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억 투자받은 블라인드의 '명과 암'

by김현아 기자
2021.05.18 15:31:11

①밝은 면: 플랫폼도 모르는 철저한 익명성
②밝은 면: 업종 문화 바로미터 되다
③어두운 면: 자살 우려자 못 찾는다
④어두운 면: 직장내 여론 호도 논란 불가피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블라인드 앱


직장인 필수 ‘솔직 커뮤니티’일까, 명예를 훼손당해도 대책 없는 ‘무방비 서비스’일까.

직장인 소셜 플랫폼 블라인드가 오늘(18일) 약 416억 원(37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새삼 블라인드의 획기적인 개념이 주목받는다.

투자에는 메인스트리트 인베스트먼트, 미국 시스코 인베스트먼트, 싱가포르 파빌리온 캐피탈 등 세계적인 투자 운용사가 합류했다. 기존 투자사인 미국의 스톰벤처스와 DCM벤처스도 투자 규모를 늘렸다. 블라인드는 이 자금을 활용해 2025년 나스닥 상장 목표를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블라인드 운영사인 팀블라인드의 대표는 문성욱 씨. 한국인이다. 하지만,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고 서버 역시 미국에 있다.

덕분에 블라인드는 한국 정부의 인터넷 규제에서 자유롭다.

블라인드 앱의 밝은 면은 서비스 제공 업체도 글을 쓴 사람의 신원을 모르는 철저한 익명성이다.

회사별로 가입하게 돼 있는데 회사 이메일을 쓰느냐 여부만 보고 가입이 이뤄진다. 그런데 이 이메일도 평문 형태로 서버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가입하고 나면 사라지고 블라인드 계정 1,2,3 등의 형태로 블라인드 서버에 저장된다. 회사 측은 철저한 익명성 보장을 위해 이 같은 ‘가입자 로직에 대한 시스템’을 특허등록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플랫폼에서 글을 삭제하는 일도 못하게 만들었다. 팀블라인드 관계자는 “블라인드 글은 작성자 본인만 가능하고 저희 권한이 아니다. 숨김처리 기능은 있다”고 말했다.

숨김처리 기능이 있다 해서 조직적인 숨김 시도가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특정인의 이름을 겨냥한 비하 글 등에 대해 게시물 단위로 신고를 받는데 순수한 것으로 판단돼야 자동으로 숨김처리된다”며 “동일기기로 여러 번 신고가 들어오거나 회사 측에서 조직적으로 팀을 짜서 신고하는 행위 등은 걸러낼 수 있도록 감지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의 가입자 수는 미국과 한국에서 500만 명 이상이다. 체류 시간은 하루 평균 40분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체류 시간이 긴 유튜브(46분)에 맞먹는 강력한 사용자 로열티가 특징이다.

한국은 재직자 300인 이상 기업체 근로자의 85% 이상이 블라인드를 사용한다. 영국 M&A 전문지 머저마켓에 따르면 블라인드는 마이크로소프트 재직자의 90%, 페이스북 재직자의 70%가 회원이다.

기자 역시 블라인드 사용자다. 이데일리 라운지와 언론·매거진 라운지에서 선후배 언론인들을 만난다.



회사에 대한 불만·불평 글들이 많지만, 동종 업계에서 관심가질만한 내용도 토론된다. 이미 보도된 기사에 대한 토론, 기자 생활에서 느끼는 불안과 이직 고민 등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이런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 문화 덕분에, 블라인드는 출시 5년 만에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직장인 소셜 플랫폼이 됐다. 링크드인 다음으로 인증된 화이트칼라 가입자가 가장 많다.

블룸버그 창업자 마이클 블룸버그가 미 대선 민주당 경선 당시 자신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블라인드의 재직자 평가를 활용할 정도로 미국에서는 조직 문화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철저한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를 주지만 자칫 위급 상황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올해 초 카카오 직원이 카카오 블라인드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썼지만, 카카오는 그를 찾아 도울 수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팀블라인드에 협조를 구했지만, 그의 신원 정보를 넘겨받는 게 불가능했다. 다행스럽게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카카오톡 같은 국내 SNS에 ‘유서’를 쓰면 자살예방법(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에 따라 경찰 등이 자살 의사나 계획을 표현한 사람의 정보 제공을 요청하면 회사서 그의 개인정보를 넘겨받을 수 있는 것과 다르다. 블라인드에는 개인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의 의견이 전체인 양 평가받는 한계도 존재한다.

이달 초 네이버 블라인드에는 고위 임원 A씨의 강아지를 모델로 한 스티커가 출시됐다며 직장 내 갑질이라는 의견 글이 올라왔는데, 사실 네이버 스티커샵에는 다른 고위 임원 B씨 등을 모델로 한 스티커도 있다.

해당 스티커는 입사 20주년 기념으로 후배들이 아이디어를 냈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내 여론도 상당했지만, 블라인드에 적극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문제점을 말하려는 사람이다 보니 균형 잡힌 사내 여론을 대변하기 어려웠다. 이런 경우는 KT 대표와 MZ 세대 간담회, SK텔레콤의 인적 분할 관련 글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업 홍보실 관계자는 “블라인드 때문에 못살겠어요. 전체 직원의 1~2%도 안 되는 사람들의 의견이 회사 전체 여론인것처럼 기사화 되죠”라고 하소연했다.

퇴사자도 계속 글을 쓸 수 있는(처음 메일 인증 이후 고객 정보를 서버에 남기지 않음) 시스템적인 허점도 정확한 여론을 대변하기 어려운 어두운 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