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제안은 왜 '찻잔 속 태풍'에 그치나

by박수익 기자
2015.03.24 14:23:25

올해 주총시즌 주주제안 안건 연이어 부결
현행 법·규정 소액주주들에게 불리한 구도
주총소집공고 기간 확대 등 제도 개선 필요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GS계열 피혁업체 삼양통상(002170)은 개인 소액주주들이 비상근감사 선임을 추진하는 주주제안을 시도하자, ‘감사1명 이상’을 ‘감사 1명’으로 바꾸는 정관변경안을 내놓았다. 코스닥상장 정보보안업체 인포바인(115310)도 감사선임을 시도하는 외국계펀드의 주주제안에 정관변경으로 맞불을 놨다. 두 회사 모두 오는 27일 열리는 정기주총에서 회사측 정관변경이 통과되면 현 감사의 임기가 만료될때까지 주주들이 감사 후보를 제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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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회사가 주주제안 차단용 정관변경이라는 ‘히든 카드’를 꺼내 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행 상법이 자리잡고 있다. 상법상 주주제안은 주주총회 6주 전까지 해야 하지만, 회사가 발표하는 주주총회 안건공고는 주총 2주 전까지만 하면 된다. 주주들은 회사의 카드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주주제안을 해야 하는 반면 회사는 주주들의 카드를 충분히 파악한 뒤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것이다. 회사와 주주가 만나는 주총을 ‘축구장’에 비유하면, 경기 시작전부터 평평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져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올해 주총시즌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는 주주들의 반란은 결과적으로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있다. 24일 대신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차 슈퍼주총데이’였던 지난 20일까지 주주총회를 마친 기업 중 주주제안 안건이 있었던 곳은 6개사다. 이중 주주제안이 원안대로 승인된 곳은 KSS해운(044450) 1개사 뿐이다. KSS해운의 주주제안안건(이익공유제)는 기관·개인 주주가 아니라 회사창업자이자 대주주가 제안한 것이어서 일반적인 주주제안과 거리가 있다.

결국 주주가 제안한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한 곳은 지금까지 한 곳도 없는 셈이다. 삼성공조(006660)는 지분 4.26%를 가지고 있는 유경PSG자산운용이 감사선임과 배당확대 안건을 제시하고 위임장 확보에 나섰지만 표대결에서 밀렸다. 피씨디렉트(051380)도 주주가 제안한 사내이사 선임과 정관변경안이 모두 부결됐다. 영화금속(012280) 주총에서 현금배당을 놓고 회사측(주당 25원)과 주주측(주당 50원) 안건이 절충돼 주당 30원이 통과된 것이 그나마 올해 주총시즌에서 주주들이 거둔 소기의 성과다.



전문가들은 현행 주주제안 제도는 소액주주들에게 불리한 측면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호준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실장은 “주주는 어떤 안건이 주총에 상정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주제안을 해야하는 불합리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이 때문에 주주제안 기간을 주총 6주 전에서 주총 1일 전 등의 방식으로 연장하거나, 반대로 주총소집공고 기간을 더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총안건을 평가할 수 있는 실질적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정기주총에서 승인을 받아야하는 대표적 안건인 이사보수한도의 경우, 실제로 회사 측이 직전연도에 누구에서 어떤 근거로 얼마를 지급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찬반 의사를 표시해야한다. 연간 5억원이상 보수를 받는 등기임원의 급여내역은 사업보고서에 공시하지만, 사업연도 종료후 90일이내에만 제출하면 되는 사업보고서를 주총보다 앞서 발표하는 곳은 드물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회계사는 “어차피 사업보고서에 들어갈 보수내역 등을 주총 안건공고때 첨부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공시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현재 법률상 주총 승인사항만 가능한 주주제안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드시 이사선임이나 배당안건이 아니어도 회사에 권고적 주주제안이 가능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강제적 이행효과는 없더라도 이사회가 주주들의 목소리에 보다 귀를 귀울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전자투표와 서면투표를 의무화하고, 주총 결과 공시때 주주총회 출석률과 안건별 찬반비율도 함께 공시토록 하는 방안도 주주제안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용어: 주주제안은 일정 요건을 갖춘 소수주주가 주총 안건을 제안할 수 있는 권리다. 상법상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총수의 3%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상장법인의 경우 자본금 1000억원 이상 기업은 0.5%, 자본금 1000억원 미만 기업은 1%의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하면 주총 6주 전에 서면 또는 전자문서로 주주제안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