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혼다 뉴 파일럿, 팰리세이드보다 천만원 비싼 가치?
by남현수 기자
2018.12.24 14:25:59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남현수 기자= 혼다의 대형 SUV 파일럿 부분변경 모델이 19일 출시됐다. 공교롭게도 현대차 대형 SUV 팰리세이드와 시기가 겹친다. 국내 대형 SUV 시장은 팰리세이드 효과로 오랜만에 활짝 피고 있다.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사는 한국. 더구나 대다수가 밀집 아파트에 산다. 유난히 좁은 아파트 및 각종 주차장에 어울리지 않는 게 대형 SUV인데 전성시대를 맞았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혼다코리아는 19일 경기도 화성 현대기아차 중앙연구소 옆 롤링힐스 호텔에서 시승회를 열었다. 공교롭게도 현대차그룹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다. 파일럿 출시는 팰리세이드가 가져온 대형 SUV 시장 폭발에 편승한 듯 하다.
“파일럿이 팰리세이드와 어떤 점이 다르냐”는 질문에 혼다코리아 관계자는 “파일럿은 수입 SUV로 팰리세이드보단 포드 익스플로러가 주요 경쟁 상대”라고 답했다. 혼다코리아가 밝힌 국내 판매 목표는 월 140대로 많진 않다. 기존 파일럿이 월 평균 100대 정도 팔린 것을 감안하면 상당수 익스플로러 고객을 뺏어와야 한다. 익스플로러는 국내에서 월 500대를 팔고 있다.
파일럿은 2003년 1세대를 출시한 후 지난달까지 북미에서만 190만대 이상 팔렸다. 베스트셀링 대형 SUV다. 현대차는 맥스크루즈 후속인 팰리세이드로 북미 대형 SUV 시장을 다시 한 번 노크한다. 지금까지는 뾰족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팰리세이드가 성공하려면 역으로 파일럿 판매를 뺏어와야 하는 운명인 셈이다.
파일럿은 5490만원의 8인승, 5950만원의 7인승 엘리트 두 모델로 출시됐다. 그 중 시승차는 7인승 엘리트 모델이다. 7인승 모델은 2열 시트가 독립식으로 들어가 2명이 탑승 할 수 있다. 8인승 2열은 일반적인 벤치형 시트로 3명이 앉을 수 있다.
뉴 파일럿의 외관은 세련되게 변신했다. 혼다를 상징하는 플라이 윙 라디에이터 그릴은 강인한 인상을 준다. 또 가로로 쭉 나열된 풀LED 헤드램프는 요즘 디자인 트렌드를 물씬 풍긴다. 측면은 대형 SUV답게 시원하다. 쭉쭉 뻗은 캐릭터라인이 특징이다. 덩치에 걸맞는 커다란 20인치 휠은 스포티함을 더한다. 센터페시아나 계기반 디자인은 기존 모델과 큰 차이가 없다. 가장 눈에 띄게 바뀐 부분은 혼다 어코드나 오딧세이에 봤던 버튼식 기어노브가 적용된 점이다. 물론 팰리세이드도 버튼식 기어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막상 사용하면 편리하다.
파일럿은 대형 SUV답게 제대로 된 3열을 갖추고 있다. 3인승이지만 사실상 성인 2명이 탈 정도다. 3열 승객이 편리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원터치 방식의 워크인 스위치를 장착했다. 실제 3열에 앉아보면 체구가 작은 어린아이가 탑승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다만 운전석 쪽 3열 시트에는 카시트틀 장착 할 수 없다. 혼다 관계자는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차는 전량 미국에서 만들어진다.
파일럿에는 2,3열 편의장비가 풍성하다. 2820mm에 달하는 휠베이스는 팰리세이드보다 80mm 짧다. 그러나 2열과 3열에 탑승해보면 계단식으로 설계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시야 확보나 발을 놓는 공간을 제대로 만들어 냈다. 팰리세이드보다 잘 만든 부분이다.
2열 루프 단의 10.2인치 디스플레이는 전용 리모콘을 이용해 조작이 가능하다. 여기에 HDMI 단자를 연결해 영화를 보거나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운전을 방해하지 않도록 무선 헤드폰도 마련했다. 1열에 앉은 운전자와 2,3열 승객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캐빈 토크 기능도 달려 있다. 파일럿은 팰리세이드와 달리 2,3열도 정숙성이 뛰어나다. 팰리세이드는 디젤을 감안해도 2,3열에서 풍절음이나 노면 타이어 소음이 꽤나 올라온다. 캐빈 토크야말로 2,3열 승객과 대화하려면 팰리세이드에서 꼭 필요한 기능이다(물론 달려 있다). 2열 천장에는 면적이 넓은 글라스 루프가 장착된다. 팰리세이드와 마찬가지로 개방은 되지 않지만 2,3열 승객의 시각적인 답답함은 많이 줄여준다. 1열 선루프는 활짝 열린다.
뉴 파일럿에는 팰리세이드(8단)보다 1단 높은 9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됐다. 이전과 동일한 V6 3.5L 가솔린 엔진은 육중한 차체를 부드럽게 밀고 나간다. 최고출력 284마력, 최대토크 36.2kg.m을 발휘한다. 시내도로에서는 6,7단이면 충분하다. 고속도로에서 110km/h 이상 항속할 때 비로소 9단이 들어간다. 물론 연비에 도움을 주는 다단 변속기다. 패들시프트를 이용해 저단으로 내리면 엔진은 부드럽게 엔진회전수를 끌러 올린다. 과거 1만RPM까지 '고알피엠'을 쥐어 짜내서 힘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게 혼다 엔진이었다. 요즘은 배기가스 문제 등으로 이 방식을 버린지 오래다.
승차감은 정말 부드럽다. SUV 느낌보다는 미니밴 오딧세이의 주행 질감과 닮아 있다. 파일럿 역시 오딧세이와 플랫폼을 공유한다. 급가속을 하면 날카로운 엔진음이 가슴을 울린다. 파일럿은 폭발적으로 힘을 쏟아내진 않지만 어느 영역에서나 부족하지 않은 꾸준함을 보여준다. 파일럿의 복합 연비는 8.4km/L로 동급 대형 SUV와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 이날 시내 주행에서 막 뽑은 신차(주행거리 10km)를 감안하더라도 5km/L의 극악무도한 연비를 보여줬다. 고속도로에서는 두자릿수 10km/L가 가능하다.
파일럿에는 전자식 4륜이 장착된다. 눈길, 모랫길, 진흙길, 눈길 등 마찰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지능형 지형 관리 시스템이 운전자를 돕는다. 이 외에 반자율주행 기능인 혼다센싱이 적용된다. 여기에는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 자동 감응식 정속 주행 장치,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 도로 이탈 경감 시스템, 후측방 경보 시스템 등이 포함된다. 실제 주행에서 사용해보면 도로 중앙을 곧잘 유지한다. 또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며 달릴 때 가감속에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제대로 작동한다. 이 기능은 팰리세이드에도 비슷하게 달려 있다.
파일럿에는 초고강성 강판을 포함, 다양한 강성 수준의 강판이 차체 곳곳에 사용됐다. 덕분에 2018년 미국고속도로손해보험협회의 신차 안전도 검사에서 최고 수준의 평가를 획득했다.
문제는 비싼 가격이다. 혼다코리아는 기존 모델 대비 가격을 100만원 올렸다. 3.8L 가솔린 엔진을 단 팰리세이드 사륜구동 풀옵션 모델이 4700만원 정도다. 파일럿이 팰리세이드보다 1000만원 비싼 셈이다. 그렇다면 그런 가치를 할까?
파일럿의 최대 강점은 탄탄한 기본기다. 2000년대 초반부터 대형 SUV를 개발하며 축적된 노하우와 보이지 않는 기술력이 파일럿에 농익어 있다. 파일럿은 대형 SUV를 단순히 흉내내지 않았다. 대형 SUV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듣고 적용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녹아 있다. 2열 통풍시트 같은 편의장비는 팰리세이드에 비해 한없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파일럿은 대형 SUV로써 공간, 안전, 탄탄한 달리기 실력의 기본기 3박자를 갖추고 있다. 정숙성에 민감하면서 가족을 위한 무난한 대형 SUV를 원한다면 파일럿은 좋은 선택지다.
: 곤히 잠든 아이가 깨질 않을 만큼 부드러운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정숙성
: 사악한 실연비...연비 운전을 하지 않으면 시내에서 리터당 5km도 못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