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현실 속 꽃피우는 사랑…돌아온 '하데스타운'의 계절
by김현식 기자
2024.07.23 15:33:22
그리스 로마 신화 현대적 변주
3년 만에 2번째 시즌 개막
멜로망스 김민석 뮤지컬 데뷔작
10월 6일까지 샤롯데씨어터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기다려줘 내가 갈게 / 너를 찾을 거야 / 갈 거야 널 향해서 - ♪”
어쿠스틱 기타를 뒤로 둘러멘 가난한 청년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뮤즈이자 연인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지하 세계로 향하는 결심을 한 뒤 이 같이 노래하며 고된 여정을 시작한다. 이달 12일 서울 서초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스토리라인과 현장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무르익기 시작하는 순간에 펼쳐지는 장면이다.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해석해 만든 작품이다. 인간과 뮤즈의 혼혈로 등장하는 신화 속 인물 중 가장 뛰어난 음악가로 꼽히는 오르페우스와 독사에 물려 지하세계로 떨어지는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의 이야기, 봄·여름은 지상에서, 가을·겨울은 남편 하데스와 지하에서 보내는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한 데 엮었다. 신화 속 두 개의 사랑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변주해 결합한 독창적 이야기를 펼쳐낸다.
오르페우스는 바(Bar)에서 일하는 웨이터 청년으로 극에 등장해 주체적 결단을 내리는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로 재창조된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진다. 페르세포네는 장난기 넘치는 자유로운 캐릭터로 등장해 유쾌함을 더하고, ‘저승의 신’ 하데스는 “가난은 우리의 적”이라고 말하는 지하광산의 악덕 자본가로 무대에 오른다. 이 가운데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는 재기발랄한 내레이터 역할을 하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대사가 거의 없는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다. 중앙 무대를 둘러싸고 앉은 7인조 라이브 밴드(피아노, 첼로, 기타, 콘트라베이스, 드럼, 바이올린, 트럼본)가 연주하는 그루비한 재즈, 블루스 음악에 맞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초반부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창조한 설정이 다소 난해하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각 캐릭터가 교집합 된 이후부턴 이야기가 한결 매끄럽게 전개된다.
순수한 영혼의 몽상가인 오르페우스가 우여곡절을 거쳐 ‘세상을 구원할 노래’를 완성해 ‘하데스타운’과 지하세계에 있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과정과 불안과 의심 때문에 혼란을 겪는 이야기가 극의 핵심 줄기. 조명 장치와 안개로 신비로우면서도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 관객이 노래로 현실의 벽을 허물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오르페우스의 여정에 몰입하게 한다.
2중 회전무대는 배우들의 움직임에 역동성을 더한다. 에우리디케가 지하세계 일꾼들과 함께 기계의 부속품이 된 듯 노동력을 쏟아내는 모습은 회전무대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의 백미다. 틈틈이 등장하는 운명의 여신들은 음악과 이야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오르페우스 역은 조형균, 박강현, 김민석이 번갈아 맡는다. ‘사랑인가 봐’, ‘선물’, ‘고백’ 등의 곡으로 인기를 얻은 멜로망스의 보컬 김민석은 이번 작품으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다. 특유의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색으로 사랑 고백 넘버에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
에우리디케 역은 김환희와 김수하가 맡는다. 페르세포네 역은 김선영과 린아, 하데스 역은 지현준, 양준모, 김우형이 연기한다. 헤르메스 역으로는 최정원, 최재림, 강홍석이 출연하는데 최정원이 ‘젠더프리’로 캐스팅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하데스타운’은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고 국내에서는 2021년 첫 공연을 올렸다. 이번이 2번째 시즌이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쉼 없이 순환하고 사랑이 꽃을 피우니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게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이번 시즌은 10월 6일까지 공연하며 러닝타임은 155분(인터미션 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