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 선우예권 "이제 후회 없어…콩쿠르는 그만"(일문일답)
by김미경 기자
2017.06.28 13:37:13
반클라이번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
10일 결선 뒤 보름여만에 귀국
한국인 최다 콩쿠르 입상 기록
|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아카데미에서 열린 제15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및 앨범 발매 기념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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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자만심도 있었고 스스로의 나태함 때문에 이전 콩쿠르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어요. 5~6배 이상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이 금의환향했다. 지난 10일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권위의 ‘제15회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보름여만에 귀국이다.
2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콩쿠르 우승 이후 국내 첫 공식석상에 나선 선우예권은 “대중적인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됐는데 많은 관객이 연주회를 찾아주고 있다고 들었다. 감사할 뿐이다. 연주자로서 그보다 더 행복한 건 없는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어 “진실한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스승 리처드 구드 선생님을 많이 존경하는데 스승님을 닮고 싶다. 음악을 연주하면서 스스로 치유도 받고 행복감을 얻는 것 같다. 그런 강점을 공유하고 들려드리고 싶다.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의 저명한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기 위해 창설된 이 콩쿠르는 쇼팽·차이콥스키·퀸엘리자베스콩쿠르와 어깨를 겨루는 국제적 명성의 피아노 대회다. 55년 역사를 지닌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 우승은 선우예권이 처음이다. 2005년 양희원(미국명 조이스 양), 2009년 손열음이 각각 2위를 수상한 바 있다.
선우예권은 한국인 피아니스트로는 최다(8회) 콩쿠르 우승 보유자다. 열여덟 살 때 프라하 국제콩쿠르에서 처음 우승한 이후 각종 국제 콩쿠르를 휩쓸며 여덟 번이나 우승하는 진기록을 남기게 됐다. 그는 “커리어보다는 금전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없으면 안된다는 절실함 때문에 콩쿠르를 계속 나갔다”며 “후회 없이 연주했다. 앞으로 콩쿠르 출전은 없을 것”이라면서 “평소 해왔던 것처럼 연주 때 느끼는 진실된 감정들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음반도 나온다. 앞서 23일 반클라이번국제콩쿠르 실황을 담은 디지털 음원이 먼저 선보여졌으며 오는 8월 정식 음반이 발매된다. 유니버설뮤직 산하의 데카 골드 레이블을 통해 발매될 예정이다. 앨범에는 선우예권이 예선전에서 연주한 하이든의 ‘소나타 C장조 호보켄 48번’, 슈베르트 리스트의 가곡 ‘리타나이’,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2번’ 등을 수록했다.
선우예권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미국 커티스, 줄리아드, 매네스 음대를 나왔다. 현재는 독일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베른트 괴츠네를 사사하고 있다. 그는 2014년 스위스 베르비에 방돔 프라이즈와 2015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이 외에도 인터라켄 클래식 국제 콩쿠르, 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 등 한국인 피아니스트로는 최다 콩쿠르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승 후 첫 국내 독주회가 12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예정돼 있다.
-결과를 얻기까지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특히 반클라이번콩쿠르른 피아니스트에게 주어진 미션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꽤 많은 콩쿠르를 나갔었는데 이만큼 많은 연주를 했던 경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독주회 2곡, 피아노 협주곡 2곡, 실내악 1곡 등 시간적으로만 따지면 4시간 동안 진행된다. 체력적으로 힘든 대회다. 첫 라운드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창작곡을 연주해야 했었는데 그 점도 특이할만하다. 한 두달 전 정도 곡을 받는다. 훌륭한 프로그램이라 좋았다. 리사이틀 프로그램에도 넣을 생각이다.
-많은 대회에 나갔다. 이번 대회의 의미는
△개인적으로 복합적인 의미가 담긴 대회였던 것 같다. 나이 제한으로 거의 마지막 기회였다. 이전에 있었던 콩쿠르에서 개인적인 나태함과 소홀함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은 적이 있었다. 후회 없이 준비해서 나가고 싶었다. 준비도 많이 했고 심적인 부담감도 컸다. 그만큼 값진 상이었던 것 같다.
-대회 나가기 직전까지도 연주회가 많았다. 마인드 컨트롤은
△항상 콩쿠르를 준비할 때 연주회처럼 준비했던 것 같다. 다만 좀더 치밀하게 준비한다는 게 다른 점이다. 느슨하거나 소홀해지면 안되기 때문에 연습 내내 집중했던 것 같다. 단지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해서 콩쿠르에 크게 지장이 된다는 생각은 안했다. 연주 자체에 집중하려고 했다. 예전과 달리 일찍 부지런히 준비해서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다.
-프로 연주자인데 새로운 도전에 나선 셈이다. 대회에 나가기 전에 고3처럼 살아야 한다. 어려움은 없었나
△준비과정은 힘들었다. 콩쿠르를 준비하는 경우에는 지인들과 연락을 끊는다. 모든 걸 차단하려는 편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다. 어머니한테도 메시지를 안한다. 고맙게도 이해해주시고 기다려주신다. 다만 스트레스가 치달을 때마다 주변 친구들에게 힘들다는 얘기를 한다. 예민한 걸 그쪽에 분출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잘 받아줘서 이겨냈던 거 같더라. 그래서 생각을 잘 안하려고 하는 편이다.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대회에 자주 나간 편인데 긴장은 덜했나
△긴장감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부담감도 크다. 결과 발표 때 너무 긴장해서 일어나면서 살짝 휘청거렸다. 이마를 살짝 부딪치기도 했다. 하하.
-큰 대회 경험자로서 어떤가.
△콩쿠르랑 연주랑 큰 차이를 두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번 4월달에 콩쿠르 심사를 독일에서 하게 됐다.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심사위원 자리라는 게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는데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 안하려고 했다. 심사위원들이 나중에 해주는 말이 ‘설득력이 있었다’더라. 내 연주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설득 당했다고 말하더라. 연주자가 가진 마음가짐으로 치밀하게 준비하면 될 것 같다.
-대회 레퍼토리를 보면 다른 연주자들과 차별화됐던 것 같다.
△리사이틀 준비하듯이 준비했다. 다양한 맛들을 들려주고 싶었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들을 표출하려고 했다. 2곡은 프로그램 상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도움이 되는 곡이었고, 앙코르로 자주 연주하는 곡들이기도 했다.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다. 콩쿠르에 적합할 것 같아서 고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콩쿠르 무대에 안 좋은 곡이라고 들었다. 자주 연주되는 곡이라 라벨스 같은 경우 심사위원들이 미리 피곤함을 느낀다더라. 위험요소가 큰 곡이라더라.
-콩쿠르 전과 후, 어떻게 달라졌나
△우선 해야할 일들이 많아진 것 같다. 연주 외적인 부분들이다. 우승 직후부터 기쁨을 느끼기 전에 해야할 미팅과 스케줄이 많더라. 사진 촬영도 4시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팅도 빼곡했다. 콩쿠르 직후라서 정신적으로 피곤했는데 간절히 원했던 기회였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했다.
-결선 무대 뒤 혼자가 된 뒤 숙소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20~30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냥 ‘잘 끝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홈스테이하는 곳이 너무 가족 같은 분위기라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좋아하는 강아지도 있고,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일단 잘 끝났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콩쿠르 최다 우승자다. 또 도전한 이유는
△인생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우선 감사하게도 우승을 많이 했지만 최근 몇몇 콩쿠르에서 스스로의 나태함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게 후회스럽고 오점으로 남을 것 같더라. 그래서 다시 도전했던 것 같다.
-이번 콩쿠르는 얼마나 준비했나
△다른 콩쿠르와 비교한다면 5~6배 이상 치밀하게 준비했던 거 같다. 주변에서 ‘이렇게 일찍 준비하면 빨리 지친다’는 말도 들었다. 치밀하게 후회없이 준비했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걸 알기 때문에 근육도 단련하고, 훈련이 돼야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다.
-또 다른 큰 콩쿠르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감사하게도 안해도 될 것 같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이 대회는 연주자에게 전폭적인 지원도 해주고 특히 이번 해에는 유럽 쪽으로도 길이 열려있다더라. 콩쿠르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후회도 없다.
-콩쿠르 특전이 많다고 들었다.
△의상도 맞췄다. ‘만불’ 쇼핑 기회도 준다. 그 돈으로 신발을 샀다. 하하.
-나갔던 콩쿠르만 총 몇 회인지 알고 있나
-국제 콩쿠르는 16살 때부터 나갔던 것 같다. 매년 크고 작은 대회에 2~4곳 나갔던 것 같다. 커리어보다는 금전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없으면 안된다는 절실함 때문에 계속 나갔다.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예정된 연주회는 매진을 기록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됐다.
△많은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됐는데 감사하다. 많은 분들이 연주회를 찾아주고 있어서 감사하다. 연주자로서 그보다 더 행복한 건 없는 것 같다.
-향후 계획은
△우선 12월 20일 리사이틀이 있다. 매진이 됐다더라. 서울 공연을 하나 더 추가하려고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12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대관 절차를 진행 중이다. 아직 확정은 아니다).
-어떤 연주자가 되고 싶나
△진실을 담은 연주를 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스승 리처드 구드 선생님을 많이 존경하는데 스승님을 닮고 싶다. 음악을 연주하면서 스스로 치유도 받고 행복감을 얻는 것 같다. 그런 강점을 공유하고 들려드리고 싶다.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다.
-대회 때 많은 곡을 준비했는데 크게 애착이 남는 곡은
△모든 곡들이 항상 매순간 기억에 남는다. 이번 대회는 굉장히 부담을 느꼈다. 힘들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부담감도 느꼈는데 1차에서 연주했던 곡을 치면서 내 자신을 내려놓고 음악에 맡기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에 남는다. 콩쿠르는 혼자의 싸움이다. 체임버 라운드도 있었는데 그때 함께 연주했던 연주자들과 호흡도 잘 맞고 즐거웠다. 음악을 한다는 자체가 외로운 싸움이긴 한데 그 순간은 혼자가 아니라 동료음악가들과 함께 해서 자체로 즐길 수 있었던 무대였던 것 같다.
-한국인 연주자들이 유독 음악에 뛰어나다는 얘기가 많다.
△결과 자체만 봐도 한국인들이 많이 결선무대에 오른다. 좋은 연주자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서양인들이 한국인은 콩쿠르만 집착하고 연습만 한다더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해외 연주자들도 콩쿠르에 많이 도전한다. 국내외 차이는 없다. 한국인 연주자들의 장점은 서로 교류를 많이 하는 점이다. 악기가 다르더라도 서로 많이 의지하고 음악적 교류, 영감도 준다. 술 한잔 마시면서도 털어내고 깨닫고, 자양분이 되더라. 그래서 더 크게 성장하는 것 같다.
-콩쿠르를 준비하려는 후배 연주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순간만 보는 게 아니라 큰 그림을 그리고 여유를 갖으면 좋겠다. 때는 있다지만 조급하게 생각하거나 달려들면 음악에서 나타난다. 순수한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