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례 투표에도 의장 못 뽑은 美하원, 무슨 일인가[글로벌Q]
by장영은 기자
2023.01.06 18:12:08
美 하원, 사흘간 11차례 투표에도 의장 선출 실패
1859년 이후 164년만에 처음…하원 기능 마비
공화당 내 분열 탓…중간선거 '어설픈' 승리도 발목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미국 하원이 현지시간으로 지난 3일 새로운 회기를 시작했지만 업무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하원의 대표인 하원의장(Speaker of the House)을 뽑지 못하면서다.
하원은 3~5일 사흘에 걸쳐 11차례 투표를 실시했지만, 의장을 선출하지 못하고 공전하고 있다. 5일 11차 투표 이후 정회한 하원은 6일 낮 12시부터 12차 투표를 실시한다.
| 케빈 매카시 미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사진=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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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상원(United States Senate)과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6년 임기의 상원 의원은 미 50개 주(州)의 대표격으로 각 주에 2명씩 할당돼 있다. 상원 의장은 부통령이 겸직한다. 하원은 2년 임기로 각 주의 인구수에 비례해 선출된다. 인구가 많은 주는 하원의원도 많다. 하원의장은 하원의원의 대표로 2년마다 치러지는 하원 선거 이후 새로 뽑힌 의원들이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하원의장은 대통령과 부통령(상원의장)에 이어 미 의전서열 3위다. 각종 예산안과 법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에 그치는 서열 2위 상원의장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로 간주된다.
△전체 하원의원 435명 중 과반수(218명)의 표를 얻어야 하원의장 자리에 오를 수 있다. 투표는 회의장에 모인 각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호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통상 다수당 원대대표가 하원의장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다수당이어야 한다거나, 꼭 국회의원일 필요도 없다. 공화당 소속 맷 게이츠 하원의원이 최근 진행된 투표에서 현직 의원도 아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하원의장으로 밀 수 있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하원의원 전원을 새로 뽑은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222석을 얻어 다수당이 되면서 공화당 원내대표인 케빈 매카시가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그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주 제20선거구에서 여유롭게 승리했으며, 9선 의원이 됐다. 매카시 원내대표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이자 대표적인 친(親)트럼프 의원으로 분류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렸을 때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모습을 보여 ‘트럼프 호위무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중간선거 결과가 윤곽을 나타내면서부터 현지 언론들은 새로운 하원의장으로 매카시 원내대표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매카시 원내대표 본인도 중간선거 직후 당선된 공화당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하원의장 출마의 뜻을 밝히며 지지를 요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매카시 원내대표가 하원의장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중간선거 개표 결과가 확정되면서 예상했던 ‘레드웨이브’(공화당의 압승)가 없었던 것이 드러나면서다. 다수당 지위는 얻었지만 민주당과 큰 차이를 벌이지 못한 ‘애매한 승리’에 각종 책임론이 불거졌고 공화당은 분열 조짐을 보였다. 전체 공화당 의원(222명) 중 5명 이상이 반대하면 과반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내 20표가량의 반란표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가 매카시 원내대표를 반대하고 나섰다. 공화당 내 강경 보수 성향 하원의원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 소속 5명은 1차 투표에서부터 매카시를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투표 때마다 나오는 20~21표 정도의 반란표 가운데 19표가 프리덤 코커스와 관련돼 있다. 전체 공화당 의원 중 5분의 1가량이 프리덤 코커스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 중에서도 초강경파가 당대 분열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매카시가 당내 보수파에는 적대적이고 민주당에 유화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석 수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온건한 하원의장으로는 민주당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중간선거가 끝나면서 사실상 차기 대선을 향한 레이스가 시작된 중차대차 한 시점인 만큼 조 바이든 행정부를 강력하게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이 하원의 수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 반(反) 매카시파의 목소리다.
| 미 하원이 10차례가 넘는 투표에도 의장을 선출하지 못한 것은 164년만이다. (사진=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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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의장 선출 투표는 사실상 요식 절차로 여겨졌다. 통상 다수당의 원내대표나 다수당의 유력 후보가 나서면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2회 이상 투표가 진행됐던 사례만 해도 100년 전인 1923년이 마지막이었다. 이번처럼 10차례 넘게 투표가 진행된 것은 1859년 이후 처음이다. 남북전쟁(1861~1865년) 직전이었던 당시에는 총 44번의 투표 끝에 하원의장을 뽑았다.
△가능하다. 하원의장이 다수당 출신인 것은 과반수 득표를 얻기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지 필수 조건은 아니다. 실제 가장 최근의 11차 투표에서 매카시 원내대표가 200표를 얻는 데 그친 반면, 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민주당 하킴 제프리스 원내대표는 212표를 받았다. 투표를 거듭할수록 매카시 원내대표를 지지하는 표가 줄어들면서 일각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온건파가 손잡고 제3의 후보를 의장으로 옹립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공화당 내 분열이 계속되면서 하원의 마비가 장기화할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의장이 선출돼야 하원의원들도 공식 취임하고 입법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13일까지 의장이 선출돼 하원 운영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하원 직원들에 대한 급여 지급도 중단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