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준기 기자
2015.06.26 17:03:44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6·25 선전포고’라는 직격탄을 한몸에 받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6일 ‘사과’ 카드를 꺼내 들며 바짝 엎드렸다. 그럼에도, 청와대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청와대 내부에선 “유 원내대표가 박심(朴心)을 제대로 못 읽은 것 같다”는 사퇴 압박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이데일리와 전화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을 곱씹어보면 어떤 메시지가 (유 원내대표에게) 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전날 의총을 보니) 여당이 대통령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전날 국무회의 발언은 유 원내대표와의 ‘결별’을 선언 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새누리당이 이런 기류를 읽지 못했다는 얘기다. 다른 관계자도 “어제 발언은 박 대통령이 특정인을 단순히 혼내려 한 것이 아니다”며 “대통령의 스타일 상 확실히 ‘선’을 그은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가 버티는 한 ‘당·청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는 전날 새누리당의 유 원내대표 재신임 결정과 이날 유 원내대표의 사과에 대해선 여전히 ‘공식 입장’을 자제했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일단 청와대가 유 원내대표에게 (자진사퇴의) 기회를 열어 놓은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특히 유 원내대표의 사과와 관련해선 “당·청 간 갈등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느냐. 한낱 화해 제스처로 (당·청 관계가) 복원된다면 (박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강도 높은 발언을) 했겠느냐”고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배신정치 국민심판’ 발언이 대통령의 탈당이나 정계개편 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전망에 대해선 “너무 나간 이야기”라며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여권의 대수술, 즉 원내지도부 물갈이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 본인의 탈당이나 신당창당 등을 염두에 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당분간 ‘여론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보면 유독 ‘국민’과 ‘민심’을 강조했다”며 “정치권이 계속해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대통령 입장에선 국민을 상대로 호소해 나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에 발맞춰 친박(친박근혜)계 최고위원들도 당무를 거부하거나 사퇴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 원내대표를 향한 전방위적 압박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비박(비박근혜)계의 한 중진 의원은 “친박에서 내주 초 어떤 식으로든 의견을 표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박 대통령이 전날 의총 결과를 보고 화가 났다고 하니 친박의 움직임은 더 거칠어질 것”이라고 봤다. 다른 재선 의원은 “대통령의 임기도 반밖에 안 지났는데 여당이 대통령하고 등질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주말은 넘기겠지만 유 원내대표가 내주 초 어떤 결정을 내릴지 두고 봐야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