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좌동욱 기자
2009.12.30 20:23:01
자구계획 턱없이 부족..대한통운 매각 `뜨거운 감자`
채무재조정 진통..채권단-FI 갈등, 개인CP 상환요구 `골머리`
조건부 사재 출연 상징적 의미..기업 회생에 도움 안돼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산업은행이 30일 주력계열사 워크아웃과 대주주(오너) 사재 출연을 골자로 하는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금호그룹 앞날은 불투명하다.
시중은행들은 영업활동으로 현금이 들어올 구멍은 없는데 금호측 자구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금호그룹 일가의 조건부 사재출연은 상징적인 의미로 유동성 해소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불만이다.
특히 빚을 더 받아내겠다는 재무적투자자(FI)를 포함한 채권 금융기관 내부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지 여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호그룹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발표한 경영정상화 방안은 대우건설 풋백옵션 문제로 자본잠식 위기에 처한 금호산업과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기고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사모펀드(PEF)에 매각하겠다는 내용이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대우건설 재무적 투자자(FI)를 포함한 채권금융기관의 출자전환 등 채무재조정이 추진된다. 출자전환 규모는 2조~3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박삼구 명예회장을 비롯한 금호측 대주주(오너)들은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산업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다.
그러나 이날 채권단 회의에 참석한 시중은행 부행장들은 "그룹 경영을 정상화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한 내용"이라고 입을 모았다. 모 부행장은 "사실상 자구안 내용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앞으로 추가적인 구조조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기업은 금호산업.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 창출능력이 떨어지는데다 만기 도래하는 채무는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풋백옵션 채무를 포함한 금호산업 채무가 총 3조원으로 올해 재무제표상 자본잠식 규모가 1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시중은행들은 대한통운 경영권도 팔 수 밖에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금호 계열사중 돈되는 유일한 계열사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금호그룹이 대한통운 매각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채권단의 워크아웃 협의 과정에서 대한통운 매각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할 전망이다.
특히 채권은행들은 향후 진행될 채무 재조정 절차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우선 대우건설 재무적투자자(FI)들이 산업은행측 제안을 받아들일 지 여부도 확신할 수 없다. 산업은행은 이날 채권은행들에게 FI들이 보유한 풋백옵션 주식을 1만8000원에 사주는 대신, 풋백옵션 행사가격 3만2513원과의 차액은 무담보 채권으로 돌리겠다는 설명했다. 무담보채권으로 분류되면 손실분담 원칙이 적용된다. 이 채권중 일부는 앞으로 채무재조정 과정에서 주식으로 전환(출자전환)되면서 값어치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풋백옵션과의 차액은) 기업이 예상보다 수익을 많이 내면 추가로 받을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언제 받을 수 없을 지 기약할 수 없는 돈"이라고 표현했다.
FI 입장에서는 대우건설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됐을 경우 받을 수 있었던 기대수익이 최대 절반 가량 사라지는 셈이다. FI 지분 39.63%로 따지면 1조87000억원에 이르는 규모. 더구나 특수목적회사(SPC)나 개인 투자자들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상 채권단(채권금융기관 협의회)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FI들이 산업은행측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개별적으로 풋백옵션을 행사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를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개인투자자나 해외투자자들이 보유한 회사채나 기업어음(CP)도 기촉법 적용을 받지 않아 채무 동결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런 투자자들이 채무상환을 요구하면 금호측은 빚을 갚아야 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채권단이 지원한 신규 자금이 회사채나 CP 상환 자금으로 쓰게 할 수는 없다"며 "앞으로 채권단이 논의해 상환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호그룹이 발행한 회사채와 CP 잔액은 각각 2조9000억원과 1조6000억원으로 총 4조5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른 워크아웃처럼 기촉법 비대상자들이 워크아웃에 잘 협조를 잘 해주느냐가 관건"이라며 "기업 스스로가 나서서 이런 채권자들을 잘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박삼구 그룹 명예회장 일가가 발표한 사재 출연은 상징적인 조치로 기업 회생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은 이날 "박삼구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인 모두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 전부를 사재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사 경영이 악화되거나 대주주가 채권단 뜻을 따르지 않을 경우 주식 처분권을 채권단이 가지는 것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조건부` 사재 출연이다.
박 명예회장 등 금호측 오너(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주식은 금호석유화학 42.15%, 금호산업 6.47% 정도로 시가로 따져 3000억원 남짓한 액수다. 게다가 금호 계열사 주가가 하락하면서 보유 주식중 상당부분이 이미 담보로 잡혀있어 사실상 담보권의 의미가 없다고 은행권은 설명한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대주주가 보유한 재산이 없어 내놓을 게 없다고 말하는데 실제 개인 재산을 추적해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