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여성 26세에 결혼…대학졸업 전 결혼하면 왜 안되죠?"[ESF2024]
by임유경 기자
2024.06.20 16:28:08
이스라엘 인구학자 알렉스 와인랩, 韓 저출생 해법제시
출산 장려 위한 '정책'보다 '환경' 만들어야
다양한 인생 경로 선택 가능한 분위기 조성 강조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 가족친화 기업확대 방안 제시
[이데일리 임유경 이용성 기자] “‘대학 진학, 직장 입성, 결혼, 자녀 출산’ 이 순서대로 인생의 경로를 진행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불규칙한 인생 경로를 허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가족을 가지는 것이 경력 구축에 방해된다고 느끼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인구통계학자 알렉스 와인랩 이스라엘 사회정책연구소(타우브센터) 선임연구원은 20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신라호텔에서 ‘인구 위기…새로운 상상력,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제로 열린 ‘제15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에서 “한국과 같은 저출산 국가는 출산 장려 ‘정책’보다는 사회·제도·산업 맥락에 출산 장려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알렉스 와인랩 이스라엘 사회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이 ‘결혼율 제고, 일 가정 양립을 위한 사회 문화적 환경 조성’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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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랩 선임연구원은 한국과 이스라엘은 유사한 점이 많지만, 출산율에 있어서는 극명히 갈린다고 짚었다. 의무 군복무 제도를 두고 있고, 근로자들은 오랜 시간 일을 하며 지정학적 위협으로 국방에 더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 보호 등에 쓸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은 비슷하다. 반면, 이스라엘은 1980년대 이후로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 3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빠르게 출산율 감소를 겪고 있다.
그는 이런 차이가 “이스라엘의 출산율 장려 환경 조성에 따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더 불규칙한 인생 경로를 허용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 주효했다”고 소개했다. ‘대학 진학-직장 입성-결혼-자녀 출산’은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 국가에서 기대되는 모범적인 인생의 궤적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군복무(남성 3년, 여성 2년) 이후 대학 진학 시점인 22~23세부터는 개인에 따라 인생의 경로가 제각기 달라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이스라엘 여성의 중위 결혼 연령은 26세, 첫 출산 연령은 28.3세다. 이는 많은 사람이 대학을 다니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스라엘 접근 방식의 근본적인 질문은 ‘결혼을 꼭 대학을 마치고 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라며 “하나의 단계가 끝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선형적인 인생의 경로만 강요되는 것은 출산 장려 환경 조성에 있어서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직장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스라엘에 자리 잡은 중요한 출산 장려 환경이다. 와인랩 선임연구원은 “이스라엘 기업들은 이력서에 결혼 여부와 자녀 수를 적도록 하는데, 이는 불이익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다. 또 회의 중이라도 자녀나 배우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육아에 할애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근무 시간을 조정해주는 것도 일반적이다. 그는 “공공기관은 물론 일반 기업들도 자녀가 5살이 될 때까지 근무 시간을 하루 1시간씩 줄일 수 있다”며 “이렇게 하면 부부 중 한 사람이 오전 7시 30분 출근해 이른 오후 퇴근하고, 다른 한 사람은 늦게 출근하며 교대로 아이를 돌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와인랩 선임연구원은 끝으로 “지난 20~30년에 걸쳐 저출산 국가들은 다양한 정책을 펼쳤지만, 출산율을 높이는 데 충분히 효과적이진 못했다”며 “이스라엘의 교훈처럼 친가족적인 환경을 만들어 아이를 낳는 것이 직업적 성취를 이루는 것과 상충하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인구위기…새로운 상상력,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제로 제15회 이데일리 전략포럼(Edaily Strategy Forum 2024)이 20일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결혼율 제고, 일 가정 양립을 위한 사회 문화적 환경 조성’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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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무대에 오른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이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해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으로서 삶의 질을 보장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에 축적된 많은 문제들이 삶의 만족도를 저하시키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지나친 경쟁과 교육열, 승자독식과 학벌사회가 사라져야 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불균형 해소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상황도 낮은 삶의 만족도를 만드는 요인”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여성의 독박육아·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고 아빠의 돌봄 참여를 가능케 하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가족친화 기업 확대는 비교적 단기간에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책이라고 소개했다. 정 교수는 “중앙부처가 경제계·노동계와 손을 잡고, 가족친화기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회원 기업 확대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며 “가족친화에 관심 있는 기업을 회원으로 모집하고 세제 혜택 등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가족친화기업 및 경영은 개별 기업이 필요성을 느껴야 확산할 수 있다”며 “축적된 지식을 가진 전문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기업의 성공이 보장된다는 인식이 기반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