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씨 마르고 값 치솟자…김치·유통업계 '배추 확보 전쟁'
by김범준 기자
2022.09.27 15:01:23
5~6월 가뭄, 7~8월 폭염·폭우·태풍 피해에
전국 산지 배추 수확량 급감하며 가격 급등
포장김치 업체, 3~5개월치 재료 비축분 동나
'배추전담팀' 꾸리고 전국 산지 물량확보 나서
이르면 10월말 회복…"김장철 전 수확량 관건"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배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김치 제조업계와 유통사들이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이미 일부 제품은 없어서 못 파는 일시 품절 사태가 벌어지면서 개별 업체들이 밤낮으로 전국 산지를 돌며 김장 김치용 배추 물량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배추를 고르는 시민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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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이날 기준 배추 한 포기 평균 소매가격은 9307원으로 전월 대비 약 45.7%(2919원), 전년 대비 약 66.2%(3709원) 올랐다. 배추 한 포기당 최고 가격이 1만4900원에 달하는 곳도 있다. 도매가격도 10㎏ 기준 평균 2만7760원으로 1년 전(1만2995원) 보다 2배 이상(113.6%) 급등했다.
최근 배춧값이 치솟은 이유는 작황 부진에 따라 수확량이 크게 줄면서다. 오뉴월 가뭄에 이어 지난 여름에는 기록적인 폭염에 폭우와 태풍까지 예상을 뛰어넘는 이상 기후 여파로 전국 고랭지 배추가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배추는 파종 후 수확까지 통상 2개월 안팎이 소요되는데, 지난 5월부터 8월 사이 재배한 배추가 이상 기후 탓에 수확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또 폭우와 태풍 피해 이후 지난달 말에서 이달 초 새롭게 파종한 배추는 빨라야 다음달 중순 이후에야 수확이 가능해 수요와 공급의 ‘갭’이 발생한 것이다.
11월 김장철을 본격 앞두고 가정에서도 배추 수요가 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수급량에 김치가 ‘금(金)치’가 되고 있다. 배추뿐 아니라 양파, 무, 대파 등도 생산량이 줄어 김치 재료 수급 어려워지자 직접 김장을 담그는 대신 포장김치를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
실제 일부 인기 브랜드 제품의 경우 이미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채널과 각종 온라인몰에서 일시 품절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일단 미리 사두고 보자는 가수요까지 더해지며 품귀 현상과 가격 오름세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국내 주요 포장김치 제조사 CJ제일제당(097950)과 대상(001680)은 배추 등 원재료 가격과 에너지·물류 비용 상승을 이유로 김치 가격을 인상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15일 대형마트부터 순차적으로 ‘비비고 김치’ 소비자가격을 평균 약 11% 올렸고, 대상은 다음달 1일부터 ‘종가집 김치’ 판매가격을 평균 9.8% 올린다. 농협은 물가 부담을 덜기 위해 ‘한국농협김치’ 제품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포장김치 판매대.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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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춧값이 금값…업계 치열한 ‘김치 쟁탈전’
업계는 배추 물량 확보를 위한 방안 마련에도 몰두하고 있다. 보통 김치 제조에 필요한 배추 등 각종 원재료는 3~5개월치를 비축해두는데 최근 수급이 달리며 ‘곳간’이 차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사내에 ‘배추 구매 전담팀’을 가동시키고 밤낮과 휴일 없이 전국 배추 산지를 돌며 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현재 워낙 배추 수확량이 적은데다, 크기와 상태가 좋은 김장용 배추를 찾기는 더욱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재배 계약이 무색하게 값을 세게 쳐주는 곳으로 납품이 집중되면서 서로 뺏고 뺏기는 이른바 ‘배추 쟁탈전’이 난무한 상황이다.
김치 제조사뿐 아니라 대형마트도 배추 확보를 위해 분주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나섰다. 이마트(139480)는 올해 강원 지역에서 배추 공급업체를 추가로 확보하고 전체 배추 물량의 약 30%를 공급받을 예정이다. 기존에는 강원도 태백농협 등에서 배추 물량을 수급해왔지만, 올해는 작황을 예측하기 어려워 이미 계약한 산지만으로는 김장철 물량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롯데쇼핑(023530) 롯데마트는 그간 김장철 배추 물량 대부분을 강원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에서 수급해 왔지만, 최근 해당 지역 작황 부진으로 강원 강릉시 안반데기 배추 농가와 계약면적을 예년보다 40%가량 더 늘렸다. 이 밖에도 수급 안정을 위해 강원 영월·영양·평창군 등 준고랭지에서 생산되는 배추 물량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금 산지에서 배추가 워낙 귀하다 보니, 가령 농가와 1000원에 계약했어도 다른 업체가 2000원 준다고 하면 돌아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서 “그렇다고 흉작 피해를 입은 농가를 마냥 탓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배추 전쟁’이다”라고 토로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국내 배추 산지가 북쪽 강원도부터 최남단 해남까지 전국에 있어도 현재 없는 배추를 갑자기 만들어 내거나 확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본격 김장철 전인 10월 하순부터 새롭게 수확되는 배추가 얼마나 충분한 물량으로 시장에 풀리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 배춧값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지난 21일 강원 춘천시 서면 신매리의 배추밭에서 농민들이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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