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다, 최고의 리더"…일본은 왜 김연경에 열광하나

by김보겸 기자
2021.08.06 15:59:54

올초 쌍둥이 논란 잠재운 김연경 리더십에 주목
"특유의 통솔력으로 흥국생명 V자 반등시켜"
벤치 후보선수서 올라운더 성장스토리에 열광
뿌리깊은 혐한정서도 배구로 한풀 꺾인 모습

김연경 선수가 지난달 29일 도미니카공화국을 상대로 득점한 후 기뻐하고 있다(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지독하게 멋있다. 김연경은 최고의 리더다. 신(神) 같다.”

일본에서 도쿄올림픽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김연경(33·중국 상하이) 선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올 초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촉발한 팀 내 불화로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리더십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김연경의 실력뿐 아니라 인성에도 주목하면서 혐한 정서까지 극복하는 모습이다.

일본 다이제스트는 지난 1일 ‘쌍둥이 자매의 악질 왕따 소동을 불러온 김연경의 엄청난 카리스마’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2월 초 불거진 쌍둥이 자매 논란을 전했다.

매체는 김연경을 “숙적(일본)과의 일전에서 팔면육비의 활약을 펼친 주장”이라며 “한국 체육계에서 가장 국민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현역 선수”라고 소개했다. 팔면육비는 여덟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이라는 뜻으로, 공중에 뜬 상태에서도 빈 공간을 찾아 공격 지점에 정확하게 내리꽂는 순발력을 가진 192cm 장신 김연경 선수를 빗댄 표현이다.

김연경에게 괴롭힘을 받고 있다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저격 글을 올린 쌍둥이 자매에 대해서는 “프로 정신으로 뭉친 베테랑 김연경에 비해 자매는 연예인마냥 행동했고, 이다영이 이재영에게만 토스를 올리는 등 플레이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다영이 김연경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팀이 공중분해될 뻔 했지만, 김연경은 특유의 통솔력으로 (소속구단인) 흥국생명을 V자 반등시켰다”고 평가했다.



시즌 뒤 김연경이 중국 상하이 이적 계획을 발표한 데 대해서는 “소동에 관련된 일에 책임을 느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성실한 선수 본인의 성격으로 볼 때 무관하다 할 수 없다”고도 했다.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브라질과의 4강전을 하루 앞둔 5일 오후 일본 시오하마시민체육관에서 훈련을 마친 김연경이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연경의 만화 같은 성장 스토리에도 일본은 주목하고 있다. 김연경은 배구선수였던 언니를 따라 배구에 발을 들였지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동료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키 탓에 벤치에 앉아 교체를 기다리는 후보선수였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키가 자라지 않아 축구로 전향할까도 생각했지만 “손발도 크고 공을 좋아하니 배구를 계속 해 보자”는 감독의 격려에 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165cm가 되지 않았던 김연경이 집중한 건 리시브와 토스 등 기본기였다. 김연경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할 수 없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후 고등학교 선수 시절 20cm 폭풍 성장하며 공격수로 투입됨에 따라 수비와 공격 모두 우월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전형적인 소년만화 성장 스토리의 실사판에 일본 열도는 열광하고 있다.

5일 오후 일본 시오하마시민체육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훈련에서 김연경이 집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성숙한 스포츠맨십과 팬서비스도 인기에 한 몫 한다. 한 일본 트위터 이용자는 “한국인을 정말 싫어했던 내가 이렇게 변한 건 한국과 러시아 여자배구를 직접 봤을 때부터”라며 “상대팀과 악수할 때 다른 사람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한 손으로 가볍게 하는 느낌인데 김연경 선수는 제대로 상대방 눈을 보며 두 손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또 다른 이용자도 “김연경이 (일본) JT마베라스에 있을 때 딱 한 번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여러 선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일본 선수들은 집중하고 있었는지 이 쪽을 볼 수조차 없었다”며 “당시 초등학생이라 좀 의기소침해졌는데 김연경만은 돌아봐 줬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일본 내 뿌리깊은 혐한 정서도 배구로 한풀 누그러진 모습이다. 한 일본 네티즌은 JT마블러스 시절 김연경의 사진과 함께 “일본을 응원하지만 한국 김연경을 너무 좋아해 배구만은 양쪽 다 응원하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다른 이용자는 지난달 31일 ‘김연경’에 이어 ‘일본 리베로’가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로 떠오른 사진을 올리며 “이대로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적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