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쌓아두던 북미 기업들, 트럼프시대에 돈 푼다(종합)

by이민정 기자
2017.01.03 13:55:18

S&P500 기업들의 분기별 자본지출 증감 추이(전년대비) 출처:S&P다우존스, WSJ


[이데일리 이민정 기자] 최근 몇 년간 경기 불황으로 인해 현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쓰지 않고 있던 미국 기업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돈 풀 준비를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 덕에 기업 경영환경이 개선되고 미국 경제 확장세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법인세 감세, 인프라스트럭처(사회기반시설) 투자 확대 등의 공약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기대에 기업 경영진들의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한 확신을 갖고 설비투자나 건물투자 등 적극적으로 자본지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수 년간 미국이 제로(0)%대 기준금리를 유지하면서 기업이 저렴하게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지만 경제 둔화가 계속되면서 기업들은 투자를 줄여왔다. 실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년동안 S&P500지수 편입기업들의 투자는 17% 줄어들었으며 이후에도 투자는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 대신 미래에 대비해 현금을 쌓아두기를 선호했다.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 철도회사 CSX 등은 저금리에 자금을 조달해 투자 대신 퇴직연금 제도를 강화했다. 건축자재 및 인테리어 도구 판매업체 홈디포와 외식업체 얌브랜드는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해 자사주를 매입하는데 썼다. 2015년 한 해 종안 러셀30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은 7000억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2008년부터 작년 11월30일까지 S&P5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이 퇴직연금 프로그램에 집어넣은 자금은 5500억달러에 달한다. 반면 이 기간중 새로운 공장 건설과 노후된 설비 개선에 대한 투자는 지지부진 했다.



그러나 트럼프발(發) 경기 호조 전망으로 이 같은 추세에 조만간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찰스 멀포드 조지아 공과대학 교수는 “올해 의미있는 자본지출 붐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비디오게임 소매업체 게임스톱은 2010년만해도 3억달러를 자사주를 매입하는데 썼지만 작년에는 자사주 매입을 줄이는 한편 1억6000만달러를 설비투자 등에 사용했다.

철도차량 판매 등 미국내 사업이 전체 매출에서 40%를 차지하는 독일 철강회사 클로크너는 미국내 강철을 만드는 기계 등의 설비 투자를 늘릴 방침이다. 앞서 클로크너는 저(低)유가 시절 비용 감축 등을 위해 미국내 저장탱크와 철도차량 건설 등의 투자 계획을 연기했었다. 미국에도 대규모 사업장을 운영하는 캐나다 허스키 에너지는 올해 자본지출 규모를 26억~27억달러로 작년보다 20억달러 가량 늘린다고 밝혔다. 허스키는 주요 석유 시추 설비투자 등을 단행해 석유 생산 규모도 늘릴 방침이다. 미국 파이프라인 대기업 킨더 모건도 올해 사업확대 등을 위해 자본지출 예산을 32억달러로 늘렸다. 킨더모건은 작년 당초 43억달러로 자본지출을 책정했다가 사업여건 악화 등으로 27억달러 집행에 그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자금 조달비용이 이전보다 비싸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업들의 자본지출 계획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지난 12월 기준금리를 1년만에 0.25%포인트 올리면서 미국 경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올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임을 시사했다. 시장은 올해 세 차례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기스버크 률 클로크너 이사회의장은 “자금 조달에 100bp금리를 더 지불해야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200bp를 지불하더라도 여전히 조달금리는 저렴한 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