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문 닫고 순찰 돌고”…태풍 북상에 서울 '초긴장'

by황병서 기자
2023.08.10 15:02:05

한반도 관통 제6호 태풍 ‘카눈’ 상륙…시민들 걱정 ‘한가득’
상인들, 가게 문 닫거나 준비 '만전'…침수 아파트선, 비상근무 돌입
‘예약된 열차 운행 중지될라’ 시민들 발 동동…맞벌이 부부 자녀 등원 ‘고심’도

[이데일리 황병서 이영민 기자] “어지간한 바람이면 괜찮은데…회오리 바람이라도 불면 가림막이 꺾일까 봐 걱정이죠.”

서울 전역에 태풍주의보가 내린 10일 오전 9시 남대문시장. 신발가게 직원 김모(57)씨는 신발 진열대 위로 설치된 가림막이 바람에 부러지지 않게 하려고 밧줄로 동여매고 있었다. 진열대 양옆을 비닐로 덧대 신발이 젖는 것을 막는 작업도 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시장 상인회가 태풍을 조심하라고 방송으로 여러 번 공지하고 있다”며 “남대문 시장 저지대 가게에는 물이 들이찰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한 상인이 제6호 태풍 카눈에 대비해 진열된 물품이 젖지 않게 하기 위해 천막을 두르고 있다(사진=이영민 기자)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시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이번 태풍은 육상에 상륙한 뒤 시속 20㎞대의 느린 속도로 15시간에 걸쳐 우리나라에 많은 비를 퍼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내린 집중호우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들은 또 한 번 들려온 비 소식에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날 남대문 시장 상인들은 일찍 장사를 접거나 태풍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방을 판매하는 임모(40)씨는 출근 시간인 오전 9시 30분께 가게 정리에 들어갔다. 그는 “원래 평일에는 오후 7시쯤 퇴근을 하는데 태풍 때문에 사람이 없어 오늘 가게를 접으려고 한다”며 “천막이 있으니까 물건은 안 젖을 텐데 손님이 오지 않아서 문제”라고 토로했다. 남대문시장중앙회에서 근무하는 박성봉(62)씨는 “매번 대비하지만 강한 태풍이 오면 속수무책”이라며 “어제부터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배수구를 다 열고 상가지붕 천막을 모두 접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같은날 오전 9시 20분께 찾은 서울역에서도 태풍의 영향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민들은 태풍으로 인해 열차가 중단되거나 지연됐는지 전광판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이날 강릉으로 남자친구와 여행을 간다는 이모(34)씨는 “태풍이 올지 모르고 날짜를 맞춰 이번에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열차들이 운행 지연이 떠서 걱정”이라면서 “부산으로 놀러 가려던 사람은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역 내에서는 시민들이 “우리 열차 왜 지연됐지”, “타는 곳이 아직도 안 나오는데 불안하네”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도 보였다.



10일 오전 9시께 서울 용산구의 서울역 내에는 사람들이 전광판 등을 통해 열차의 지연·정지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사진=황병서 기자)
특히 지난해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크게 입은 지역에 긴박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상습 침수 구역인 서초구의 진흥아파트 인근에서 10년째 장사 중인 이모(48)씨는 “지난 집중호우 당시 허벅지까지 물이 차서 냉장고와 에어컨이 모두 망가졌다”고 혀를 찼다. 이씨는 “나라에서 빗물받이를 주거나 배수구를 청소해주는 거 말고 해주는 게 없으니 우리는 모래주머니로 가게 문을 막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며 “비가 안 오기를 바랄 뿐이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아파트 경비원인 이모(79)씨도 “시간당 50~60㎜ 이상 오면 배수구가 수용용량을 초과하니까 손 쓸 수 없다”며 “오늘 저녁에 차수막을 다 치고 비상근무를 선다”고 말했다.

같은날 영등포구 쪽방촌에선 길을 다니는 시민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다는 이모(65)씨는 “태풍이 온다니까 다들 집으로 들어갔다”면서 “불안하니까 다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골목 곳곳에는 차수벽과 함께 모래주머니로 문 입구를 막은 모습도 보였다. 김형옥 영등포구 쪽방촌 상담소 소장은 “태풍 소식에 지난해 피해를 봤던 집들을 중심으로 차수벽과 모래주머니를 지원했다”면서 “오늘 저녁부터는 순찰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태풍에 따른 어린이집 등원 자제에 따라 맞벌이 부부들도 비상이 걸렸다. 경기 남양주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워킹맘 김모(32)씨는 “아이가 세 살이라 혼자 놔둘 수도 없고 맡길 곳도 없어서 우리 부부는 발만 구르고 있었다”며 “그나마 노트북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니까 옆에 데리고 있을 순 있지만, 아이도 두 돌만 지나면 눈치가 빨라져 ‘내가 엄마한테 방해가 되는구나’ 싶은 느낌을 받아 정서에 너무 안 좋다”고 말했다. 워킹맘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은 “작년 태풍 때도 서울 전 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져 급히 연차를 냈다”면서 “그날 워킹맘들이 거진 연차를 내서 회사에서도 눈치를 봤는데, 이번에는 방학 중인 학교가 많아 따라 교육청에서 공지를 안 하고 학교 재량에 맡길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7월에 내린 집중호우 이후 잇따른 태풍으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철저한 대비를 강조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이미 폭우 피해가 있었고 임시방편으로 복구를 했는데 태풍 때문에 또 비 피해가 있을 수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사전에 위험구역을 설정에서 시민 이동을 차단하고, 우회도로를 확보해 오송지하차도 참사와 같은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