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식사하시죠" 112신고…택시기사 기지로 피싱범 체포

by이소현 기자
2022.09.13 16:01:53

식사 약속인것처럼 112신고…현금 수거책 검거
신고자 용기와 경찰 빠른 판단력으로 검거 성과
대화조차 할 수 없다면…''똑똑'' 누르는 112신고
경찰 "위치추적 힘든 알뜰폰도 유용한 신고 방법"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형님, 저 가고 있으니, 식사하시죠.”

지난 2월 22일 택시기사 이모씨는 112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탑승한 손님이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범임을 직감하고 아는 형님들과 식사 약속이 된 것처럼 경찰과 대화하며 112에 신고한 것. 장난 전화로 여길 법도 하지만, 위급 상황임을 알아챈 112상황실은 고속도로순찰대를 현장으로 출동시켰다. 택시기사의 기지와 눈썰미에 112상황실의 재빠른 판단으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을 현장에서 검거할 수 있었다.

택시기사가 탑승한 손님이 전화금융사기범임을 눈치채고 식사 약속을 잡는 것처럼 신고, 112 접수 요원이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현장 경찰관들을 출동시켜 현금 수거책을 검거했다.(영상=경찰청)
대구에서는 지난 5월 26일 오전 4시30분께 “어디야?”라며 친구와 전화하는 것처럼 112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 접수요원도 위험한 상황임을 재빨리 직감하고 피해자가 있는 장소와 인상착의를 파악한 후 출동 지령을 내렸다. 4분 만에 도착한 경찰은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남성을 신속하게 검거했다.

서울에서는 작년 4월 11일 오전 2시 30분께부터 112에 전화 4통이 연달아 걸려왔다. 첫 번째, 두 번째는 무응답이었고, 세 번째는 “모텔”이라고만 얘기했다. 그러다 네 번째 통화에서 신고자는 “아빠 나 짜장면 먹고 싶어서 전화했어”라고 말했다. 위급한 상황임을 직감한 112상황실 경찰은 아빠인척하며 대화를 이어갔고, 여성이 머물고 있는 모텔과 층수를 확인해 출동 지령을 내렸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를 발견하고 객실 안에 있던 남성 2명을 특수강간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했다.

모두 신고자의 용기와 경찰관들의 빠른 판단력 덕분에 112신고가 검거로 이어진 사례다. 그러나 이 정도의 대화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가정폭력·데이트 폭력·아동학대 등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잘 듣고, 잘 보고, 잘 찾는 똑똑한 112”…‘말 없는 112 신고 캠페인 똑똑’ 홍보 캠페인(사진=경찰청)
앞으로 말로 하는 112신고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 가볍게 숫자 버튼을 ‘똑똑’ 누르면 112신고가 가능해진다. 경찰청은 말 없는 112신고 시스템을 소개하는 ‘똑똑’ 캠페인을 선보이고 대국민 홍보에 나선다고 13일 밝혔다.

절차는 간단하다. 신고자가 112에 전화를 건 뒤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 숫자 버튼을 ‘똑똑’ 누르면 말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릴 수 있다.

‘똑똑’ 소리를 들은 경찰은 ‘말 없는 112신고’임을 확인한 후 ‘보이는 112’ 링크를 발송한다. 신고자가 개인정보·위치정보 등 활용 동의를 클릭하면 영상 전송, 위치 확인, 비밀 채팅이 가능해 경찰이 적시에 효율적 초동조치를 할 수 있다. 경찰청은 “신고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말고, 신고자가 용기를 내도록 지원하려는 의도에서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경찰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전화금융사기 등 악성 사기 또는 폭행·음주운전 등 각종 범죄 현장에 있는 목격자처럼 노출되지 않기를 원하는 신고를 할 때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신고 방법이 쉬워진 만큼 허위신고 증가 우려도 제기된다. 허위 신고시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2호에 따라 6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및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위치추적이 힘든 알뜰폰도 유용한 신고 방법”이라며, “말 없는 112신고 캠페인 ‘똑똑’이 위기에 처한 국민이 용기를 내 신고할 수 있고 경찰관 누구나 상황을 빠르게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112신고 해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