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구매, 감기약보다 쉬워"…美대선, 총기규제 전면 부각

by방성훈 기자
2024.07.15 14:28:52

"트럼프, 자신이 옹호해온 AR-15 때문에 사망할 뻔"
“구매 너무 쉬워”…민주 vs 공화 총기규제 논쟁 재점화
공화당 입장 변화 없을듯…바이든에 책임 떠넘겨
바이든 사퇴 논란 줄었지만 “트럼프 승리 가능성 70%”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AR-15 소총 구매가 슈다페드(감기약)를 사는 것보다 쉽다.”

지난해 미국 메인주(州) 루이스턴에서 총기 난사로 18명이 사망한 대량 학살 이후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이같은 게시글이 확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유세 도중 총기 피격을 당한 사건으로 올해 미 대선에서는 총기규제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총기 규제 강화 주장이 힘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편, 총기규제에 반대해 온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의 입장에도 변화가 있을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1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총격으로 오른쪽 귀를 다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호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연단을 내려오면서 성조기를 배경으로 지지자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미 언론들은 14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휴대를 금지해선 안된다며 반대했던 총기인 AR-15 소총 때문에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했다”며 “미국에서 매년 권총으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지만, 가장 심각한 총기 난사 사건에서는 공통적으로 AR-15가 쓰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지난해 기준 미 성인 20명 중 1명이 AR-15를 소유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치명적인 17건의 대량 총격 사건 중 최소 10건에서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AR-15은 총기 휴대를 찬성하는 공화당 및 로비단체뿐 아니라 총기 소지를 반대하는 민주당 및 규제론자 양측에서 상징적인 무기다. 구매가 쉬운 데다, 거의 모든 미국 내 대량 학살 사건에 범행 도구로 쓰이고 있어서다. 2022년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19명의 어린이와 2명의 교사를 학살한 사건, 같은 해 뉴욕주 버팔로 슈퍼마켓에서 흑인 쇼핑객 10명을 살해한 사건, 2017년 라스베이거스 음악 페스티벌에서 60명을 대량 학살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미국에서는기본적으로 18세 이상 성인이면 총기를 구매할 수 있다. 일부 주에서만 21세 이상이 돼야 권총 또는 모든 총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즉 신분증만 있으면 총기 구매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피격한 범인도 20세였다. 또 AR-15 가격은 평균 800달러(약 110만원)로 128기가 아이폰과 비슷한 수준이다. 신분 확인 과정에서 범죄 이력 등을 조사하지만 생략되는 경우도 많다. 이에 따라 시중에 보급된 전체 총기 수가 인구수를 넘어섰으며, AR-15는 최소 2000만정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총기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해 왔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은 총기 위협에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규제를 더욱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은 수정헌법 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유로운 총기 휴대 권리를 근거로, 학교의 보안을 강화하거나 총기 사용 범죄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신 건강 관리에 더 신경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랜 기간 논란 속에 민주당은 총기규제 강화를 주도해 왔으나, 번번이 공화당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2022년 텍사스주와 뉴욕주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30년 만에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처리되긴 했으나, 이 역시 AR-15를 비롯한 공격 소총 및 대용량 탄창 판매 금지 등 핵심 내용은 빠졌다.

미 언론들은 15~18일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를 주목하고 있다. 이번 피격 사건으로 공화당 정강·정책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제기돼서다. 하지만 실현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2년 텍사스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에 전미총기협회(NRA) 행사에 참석해 총기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연설한 바 있어서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대량 학살 사건이 총기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던 그가 생각을 바꾸길 바라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평했다.

공화당 의원들도 이번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과 관련해 아예 입을 닫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거론해온 바이든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며 프레임을 짜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테러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LA타임스는 “대선 후보가 거의 총에 맞아 사망할 뻔 했는데도 공화당 주요 인사들은 총기 권리에 대한 지지를 완화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지율 회복 기회로 간주하고 총기규제 논쟁을 쟁점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민주당 안팎의 사퇴 목소리가 어느 정도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미국 내 정치적·사회적 분열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이같은 노력에도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판세가 기울어졌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어 민주당이 상황을 뒤집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웅화로 지지자들의 결집이 더욱 강화하고 있어서다. 역사적으로도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암살 시도 이후 지지율이 최대 22%포인트 급등한 바 있다. 정치 예측 플랫폼인 폴리마켓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은 8%포인트 상승해 역대 최고치인 70%를 기록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