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 앞뒀지만…'삼가 가축의 명복'은 내년 기약
by전재욱 기자
2021.06.30 14:29:18
해마다 연초 지내는 가축 위령제로 희생 넋 달래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행사 축소 및 폐지돼 예년만 못해
무더위 보양식 수요 증가할 텐데 "명복 못빌어 찜찜"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가축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철학적인 질문에 답을 구하기에 앞서, 인류는 가축의 혼을 달래는 의식을 펴왔으나 올해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코로나19 탓에 가축 위령제가 폐지 혹은 축소한 탓이다. ‘삼복더위’에 식량으로서 활약할 가축의 명복은 내년을 기약해 빌어야 할 처지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죽은 가축의 혼을 위로하는 축혼제(畜魂祭)는 매년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도축 업계를 중심으로 지낸다. 도축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고, 업계의 흥을 기원하는 차원이다. 일종의 시무식 성격으로 서로 단합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축혼제는 전통 제례가 아닌 터에 지내는 이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실재하는지 확신하기 어려운 가축의 혼을 달래는 마당에 절차를 정하는 것도 생소했을 터다. 아울러 가축에 대한 인류의 인식이 ‘식량’ 이상으로 진화한 것이 비교적 최근 일이라는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큰 틀에서 절차는 일반 제사에서 따와 지낸다. 제수(제사 음식)를 마련해 차리고, 향을 피워 강신(혼을 맞음)하고, 술을 올려 재배(두 번 절)하고, 음복(제수를 나눠 먹음)하고 철상(상을 치움)하는 식이다.
핵심은 제수를 차리는 일이라고 한다. 가축이 좋아하는 위주로 준비하는데 과일을 포함해 배추나 무와 같은 날것의 채소가 주식을 이룬다. 건초나 사료도 올라간다. 매해 5월 축혼제를 지내는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제사상에 고기를 올리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 전북 전주에 있는 농촌진흥청 본관의 축혼비 앞에서 지난달 10일 축혼제가 진행되고 있다.(사진=농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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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는 정확히 거슬러가기 어렵지만, 국내 도축산업이 발을 디디기 시작한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했으리라고 업계는 추산한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있는 축혼비(畜魂碑)가 1969년 설립한 것으로 미뤄 족히 반세기 이상은 된 의식이다. 이웃한 일본의 사료를 보더라도 기원이 반백 년을 넘는다. 오키나와현(縣) 문헌에는, 1968년 현지의 류큐 왕국에서 축혼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축혼제 대상은 종류와 쓰임을 가리지 않는다. 돼지와 소, 가금류 등을 망라하고 식량용과 실험용 혹은 폐사 등을 포함한다. 국내에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지나고 나면 폐사하거나 살처분한 가축을 위한 제가 뒤따르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올해는 축혼 분위기가 예년만 못했다고 한다. 코로나19 탓에 연초 가축의 명복을 비는 행사를 대거 축소하거나 폐지한 탓이다. 감염 차단에 따른 자발적인 자제였지만 5인 이상 집합금지도 컸다고 한다. 제를 지낸 후에는 음복을 거쳐 회식으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금지됐기 때문이다. 일본도 사정이 비슷하다. 히로시마시(市)는 매해 3월 하던 상반기 축혼제를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탓에 중지하고 분향대만 설치했다.
도축업체가 모인 한국축산물처리협회의 배현경 전무는 “저마다 사정이 다르고 전수를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올해 연초에는 축혼제를 안 하고 넘어간 회원사가 있는 걸로 안다”며 “코로나19로 제를 지내는 데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복을 앞두고 가축 소비가 늘어날 상황이지만, 앞서 명복을 비는 절차를 건너뛰어 ‘찜찜함을 지우기 어렵다’는 이들이 적잖다. 그렇다고 애초 축혼제가 전방위로 확산해온 분위기도 아니었다. B2B(기업간 거래)에서 이뤄지는 도축·도계는 가공·판매의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와 분리돼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 차원에서 산업적인 고려가 아닌 풍속을 따르는 것도 부담이라고 한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신앙 탓에 제를 지내는 걸 꺼리거나 이런 행사에 거부감이 있는 소비자가 있어 대대적으로 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