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정보의 역설

by한형훈 기자
2004.05.17 17:49:28

[edaily 한형훈기자]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가끔 정보의 홍수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최근 한 책에서 정확한 정보도 투자가들에게 그릇된 판단을 유도하는 독(毒)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악재와 호재가 한 번 씩 나오면 단순 계산으로 본전이지만, 심리적인 영향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에겐 안 좋은 것만 더 기억하고 강조하는 묘한 본성이 있습니다. 국제부 한형훈 기자입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 공부중인 친구한테서 재밌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친구는 IMF사태로 대우그룹이 해제되기 전 싸다는 이유로 대우중공업 주식을 300만원 어치 샀고 곧바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친구는 한 참 후에야 대우그룹이 박살 났고 대우중공업은 감자를 거쳐 대우조선과 대우종합기계(042670)로 쪼개진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친구는 계좌를 열어 본 후 상상을 뛰어 넘는 손실에 경악했습니다. 유학 생활이 고됐던 친구는 결국 푸념과 함께 휴지가 된 주식을 기억속에 묻었습니다. 3년이 지난 작년 가을. 친구는 국내에 들러 계좌를 정리하다 대우조선과 대우종합기계(042670)의 총 평가액이 원금 300만원을 넘어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아무 것도 모르고 공부만 하고 있는 동안 대우조선과 대우종합기계가 체질 개선에 성공하며 급등한 것입니다. 친구는 주식이 죽었다 살아났다며 기뻐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영화 같은 극적 반전에 친구는 감탄사를 남발했습니다. 당시 대우 사태를 눈 앞에서 지켜본 투자가가 이 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겁니다. 파국으로 치닫던 대우 사태를 보고 주식을 안 팔았다면 이상합니다. 하이닉스 역시 비슷한 사례입니다. 최근 하이닉스(000660) 주가는 1만원 선을 맴돌고 있습니다.주가가 300원(감자전 기준)을 밑돌며 담배값에 비유되던 모욕을 참아낸지 2년만의 일입니다. 투자가들이 다 버렸던 주식이 이젠 세계 D램시장 2위를 넘보고 있습니다. 시장에선 "D램신이 하이닉스에 행운의 미소를 띤다"는 찬사까지 쏟아집니다. 얼마전에는 씨티그룹이 인수가를 높여 하이닉스의 비메모리 부분에 강한 집착을 보였습니다. AIG 그룹이 채권단을 쥐고 흔들면서 하이닉스를 희롱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대우 계열사는 안 좋은 뉴스가 대부분입니다. 하이닉스 역시 D램가 하락이니 담배값 주가, 반덤핑 등 악재들 뿐입니다. 그동안의 단발성 뉴스를 아무리 조합해도 현재 대우중공업과 하이닉스에 대한 멋있는 그림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막연한 기억속에 두 기업들은 안 좋은 소식이 대부분입니다. 제 친구의 어설픈 행운은 어디서 왔을 까요. 친구는 주식 문외한인데다 시세판을 매일 들여 다 볼 틈도 없습니다. 친구가 만약 한국에서 대우 사태에 대한 소식을 자주 접했다면 주식을 갖고 있었을 까요. 십중팔구 친구는 원금의 10% 정도에서 술값이나 하려고 주식을 팔았을 겁니다. 친구에게는 일본에서의 바빴던 일상들이 오히려 약이 된 것 같습니다. 친구는 대우 사태와 관련, 3년에 단 한 번 공포스런 소식과 M&A·실적개선 등의 호재가 상쇄된 단순화된 결과만 봤습니다. 그 결과는 `대우중공업이 그룹 문제로 휘청했지만 펀더멘털은 살아있다"로 요약됩니다. 하이닉스도 `몇 번의 고비 후 정상궤도에 진입했다`로 단순화됩니다. 실시간 주가에 집착하는 이유는 불안감 혹은 자신감 둘 중에 하나입니다. 투자가들은 `주식이 급락하면 어쩌나` 라는 불안감으로 주가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혹은 `주가 흐름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주가를 주시합니다. 하지만, 추천할 만한 습관이 아닌 것 같습니다. 뉴욕대학 교수이자 투자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렙은 `능력과 운의 절묘한 조화`라는 책에서 주가를 자주 들여다 보는 폐해를 수학적인 사례를 들어 꼬집었습니다. 탈렙 교수는 연 15%의 수익이 가능한 투자 상품(10% 오차)은 종형정규분포를 적용할 경우 한 해 동안 한 푼이라도 벌 확률이 93%라고 합니다. 즉, 투자가가 이 상품에 투자하면서 연말에 수익률을 한 번 확인하면 10년 중 9년은 수익이 난 계좌를 접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투자가가 자주 계좌를 열면 상황이 악화됩니다. 분기에 한 번씩 계좌를 열면 돈 벌 확률은 77%로 줄어 듭니다. 한 달에는 67%, 하루 54%, 한 시간 51.3%, 1초에는 50.02%로 감소합니다. 즉, 연간 15%의 수익은 임의의 한 해에 한 번 관찰하면 돈 벌 확률이 90% 이상 이지만, 초마다 주가를 보면 확률이 50% 수준으로 급감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관찰기간이 길면 수익과 손실의 경우가 상쇄되지만, 단기간에는 상쇄 효과가 사라져 낮은 수익률을 접하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수익을 호재에, 손실을 악재에 비교할 경우 비슷한 결과를 얻습니다. 일년에 한 번 계좌를 열면 호재와 악재가 상쇄된 후의 단순화된 결과만 보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마다 뉴스와 주가를 보면 호재와 악재가 상쇄될 확률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물론 운 좋게 짧은 시간에 호재를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나약한 심리가 훼방을 놓습니다.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같은 빈도로 나와도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아 최악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인간은 호재에 대한 기쁨보다 악재에 좌절하는 아픔을 더 크게 느낍니다. 학자들도 부정적인 영향은 그 파급력이 긍정적인 것의 2.5배에 달한다고 지적합니다. 탈렙 교수는 "기준 시간이 짧을 경우 수익이 아닌 변수만 관찰되기 때문에 변화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이유로 탈렙 교수는 휴대폰이나 단말기를 통해 실시간 가격을 확인하는 투자가를 볼 때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단발성 뉴스들은 판단을 흐리는 `잡음`이 될 수 있습니다. 정확한 뉴스 조차도 길게 보면 투자가에게 잡음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우 사태나 하이닉스에 대한 언론과 분석가의 경고는 대부분 시의적절했습니다. 하지만, 반복적인 실시간 뉴스에 투자심리가 압박당하면서 `기다림의 미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집니다. 잡음과 정보를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로 귀에 들리는 뉴스와 정보에 본능적으로 반응합니다. 잡음을 피해가는 원시적인 방법은 자주 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번쯤 귀를 막고 시야를 넓게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한 재소자가 복역 후 출소하니까 갖고 있던 주식이 급등해서 벼락 부자가 됐다는 우스개 소리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