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맞은 불티"…'법학 위기' 경고한 조홍식 법학교수회장

by성주원 기자
2024.09.06 14:03:23

한국법학교수회 60주년 기념식 및 학술대회
조홍식 회장, 개회사 통해 법학 정상화 강조
법학과 축소·로스쿨 제도 변질 등 문제 지적
학부 법학교육 강화·커리큘럼 개선 등 촉구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지난 몇십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법의 중요성은 비약적으로 부각돼왔다. 그러나 법학은 이와 대조적으로 ‘찬물 맞은 불티’처럼 쪼그라들어버렸다. 법학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걱정하는 실정이다.”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인 조홍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국법학교수회 창립 60주년 기념식 및 학술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일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한국법학교수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조홍식 회장(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법학과 법학교육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 회장은 법학의 현 상황과 미래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조 회장은 개회사에서 “우리나라 전체 법학과 수가 지난 2009년 209개에서 2023년 117개로 크게 줄었고, 법학전공 입학정원도 2008년 1만명 이상에서 2023년 3000명 미만으로 급감했다”며 “법학논문의 수와 법학박사학위 취득자도 감소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로스쿨이 변호사시험 응시에 필요한 정보와 요령을 배우는 ‘변시학원’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학생들이 1만2000개에 달하는 판례 암기에 치중하고 있으며, 기초법학 과목과 변시 선택과목마저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의 교육이념이 공염불이 됐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이러한 위기가 특히 우려스러운 이유로 현재의 세계 정세를 언급했다.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로운 블록화가 가속하고 있고, 정치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입헌민주주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고 있으며, 법의 지배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기후변화와 정보혁명, 인공지능(AI)과 같은 교란적 혁신이 일상화하는 ‘대전환(grand transition)’의 시대에 법학교육의 혁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조 회장은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시민을 위한 법 교육’으로서 학부 법학교육 강화를 주장했다. 이는 ‘법의 지배’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 되도록 많은 시민이 법적 사고양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론과 실무의 균형을 맞추고, 다양한 선택과목과 기초법학 활성화를 위한 로스쿨 커리큘럼의 전면 개선을 요구했다. 현재 로스쿨 교수 788명 중 기초법학 교수는 30명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소정의 기준을 충족한 모든 법과대학에 로스쿨 참여 기회를 부여하는 준칙주의와 변호사 시험을 실질적인 자격시험으로 변화시키는 자격주의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로스쿨이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닌 ‘교육을 통한 양성’이라는 본래의 도입 취지에 맞게 운영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조 회장은 “법학이 무너지면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약속이 파기되고,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이 변화의 물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며 법학 정상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대전환기일수록 법적 사고의 중요성이 강조된다”며 현재의 사회적 갈등과 양극화 상황에서 법학교육이 강조해온 합리적 논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끝으로 조 회장은 “법학교육을 정상화하지 못한다면 저희는 맡겨진 역할에 실패한 것”이라며 사회 각계의 지원과 관심을 당부했다. 그는 “법학교육이 정상화할 때 학생들이 단순히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옳은 일을 할 기회를 포착하고 소외계층을 바라보며 법률 직업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키우면서 동시에 이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국법학교수회 창립 60주년 기념식 및 학술대회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