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北을 같은 선상에 놓은 해리스 美대사의 고별사…“韓, 이미 선택"

by정다슬 기자
2021.01.19 11:39:06

마지막 공식일정서 한미동맹에 대한 의견 밝혀
"김정은 잠재적인 기회를 인지하길 바라"
전작권 전환에 대해서는 "서두르지는 말아야"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해리 해리스 미국 대사가 2년 반의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한다. 한미동맹의 현재와 나아갈 길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주한 미국 대사로서의 마지막 공식일정에서 그는 상당 부분을 북한 못지 않게 중국에 초점을 맞추며 직면한 위협에 대응하자고 호소했다.

해리 해리스 미국 대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을 방문한 2019년 6월 3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셀피를 찍고 있다. [사진=해리스 대사 트위터]
19일 제8차 한미동맹 포럼 강연자로 나선 해리스 대사는 “한국정부가 안보동맹과 무역파트너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나는 이것 자체가 “한미동맹의 역사와 힘에 의심을 심기 위해 만들어진 잘못된 내러티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리스 대사는 “미국은 50년 전에 선택했고, 중국도 선택했다. 신생국이었던 한국은 1953년 선택했고 북한은 1961년 선택했다”며 “이것이 충분한 대답”이라고 밝혔다.

1953년은 한미상호방위조약, 1961년은 조중동맹조약이 체결된 해이다. 해리스 대사는 한국과 미국, 북한과 중국은 각각서로를 동맹으로 선택한 만큼, 미·중이 대립할 때 한국이 미국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에둘러 강조한 셈이다.

해리스 대사는 “미국은 중요한 부분에서 중국과 파트너로 함께 해 왔지만, 국제질서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이라며 “중국은 홍콩에 대해서 영국과 맺은 조약,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침해, 상업적 스파이 행위, 한국에 대해서는 경제적 보복을 위협하며 여러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말을 인용, “중국을 지휘하는 레닌주의 공산당 정치국이 국제질서를 재편하고 싶어한다”며 “이는 자유국가들이 (중국에) 경계심을 가져야 할 이유”라고도 했다.

해리스 대사는 “우리는 인도 태평양 전략을 통해 레버리지와 우월함에 기반을 둔 외교정책을 거부하고 대신 존중과 동등한 지위, 공정한 거래에 기반한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며 “부채를 무기화하지 않고 선하고 생산적인 시장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코로나 시대에 아·태 지역의 팬데믹 퇴치 노력을 악용해 남중국해에 대한 자신들의 도발적 주장을 압박하고 대만을 괴롭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리스 대사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맞춰 한미동맹의 변화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시작전권 전환 시점에 대해 “조건이 충족되는 가까운 미래”라고 밝히면서도 “우리의 상호안보는 절대 서두를 문제가 아니고 이걸 제대로 해내기 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미·일 3국이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협력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현재 한국과 일본 간 긴장 상황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어떠한 안보와 경제 이슈도 한·일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과 중국이 계속해서 한미동맹의 결의를 실험할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과의 외교가 성공적이길 바라지만, 그 희망이 우리의 행동방침은 아니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미연합사령부 훈련에 대해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고 경계를 풀지 않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며 “우리가 준비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역사적으로 많은 선례가 있고 71년 전 운명적 사건(6·25전쟁) 역시 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해리스 대사는 “북한은 세 번의 미국 대통령과 세 번의 한국 대통령의 만남이 만들어낸 기회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은 계속해서 북미 관계 변화를 위해 나아갈 것이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와 한국인을 위한 더 밝은 미래를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정은 북한 총비서도 이 잠재적인 기회를 인지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해리스 대사가 2020년 12월 25일 서울 중구 정동 미 대사관저에서 요리연구가 이혜정씨와 함께 김치를 담갔다. 이 장면은 미국의 비영리기구인 아시아소사이어티 코리아의 페이스북을 통해 25분간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사진=아시아소사이어티 코리아 페이스북 캡처)
해리스 대사는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제 46대 미국 대통령 취임과 함께 주한 미국대사로서의 임기를 끝낸다.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대사들이 일제히 사임, 부대사가 공백을 이어나가는 것이 관례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 4성급 제독 출신인 그는 2018년 5월 주한 미국 대사로 취임했다. 일본계 어머니를 둔 그는 취임 당시 콧수염이 조선 총독을 상징한다며 조롱을 받기도 했고 북한과 중국에 대한 강경적인 태도로 북한과의 대화를 중시하는 한국정부와 기조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6·25 전쟁참전 용사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중국과의 ‘김치 논란’ 당시 이를 겨냥한 듯 직접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보여주며 “김치야말로 가장 한국다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그가 사비로 한미동맹재단에 상당한 금액을 기부한 사실도 밝혀졌다.

그의 마지막 행사에 정경두 국방장관, 원유철 합동참모본부, 로버트 에이브람스 한미연합사령관, 민홍철 국방위원장 등이 참석해 그의 노력과 헌신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내가 비행복을 입든, 양복을 입든 한미동맹은 중요하고, 미국은 외교정책의 핵심 요소”라며 “이는 미국 행정부에 걸쳐 해당하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또 “감사합니다, 같이 갑시다”라는 한국말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