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보육공약 욕먹는 이유…'단설 유치원 설립 자제'에 부글부글

by김보영 기자
2017.04.14 14:50:13

안철수 병설학급 6000개 늘려 국공립 이용률 40% 공약
맞벌이 가정 방학 길고 일찍 문닫는 병설보다 단설 선호
안 캠프 "부지비용 등 감안할 때 단설 확대 쉽지 않아" 설명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등 현실성 떨어지는 보육공약에 불만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사립유치원 교육자 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의 보육공약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안후보가 지난 11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립 유치원 교육자대회’에서 내놓은 보육공약이 영유아 부모들의 희망사항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에서다.

부모들은 ‘사립유치원 독립경영 보장’ 등 안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 결국 국공립 대신 사립유치원을 육성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안 캠프에서는 뒤늦게 병설유치원 학급수를 6000개 늘려 국공립 유치원 이용률을 40%까지 확대한다는 게 핵심이라고 진화에 나섰만 성난 부모들을 달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보육공약을 내놓은 장소가 문제였다. 사립유치원 이익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행사에서 보육공약을 내놓다 보니, 참석자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앞세울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병설로 잘못 알려졌지만, “대형 단설 유치원 설립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비용은 사립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반면 교육환경이나 교사 수준은 높은 단설유치원은 부모들의 선호도가 높다.

결과적으로 단설유치원이 들어서면 주변 사립유치원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안 후보의 단설 유치원 설립 자제 약속에 대회에 참석한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은 ‘안철수’를 연호하며 환호했다. 사립 유치원에 대한 독립경영 보장도 마찬가지다. 안 후보는 이날 “지금 현재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독립운영을 보장하고, 시설 특성과 그에 따른 운영을 인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원장들과 부모들은 ‘독립경영 보장’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억제하고 있는 특별활동비 인상 허용으로 해석한다.

3세 여아를 키우고 있는 회사원 정경화(35·여)씨는 “그곳에서 ‘국공립 유치원 이용률을 40%까지 확대한다’는 보육 공약을 내놨으면 환호 대신 계란 세례가 쏟아졌을 것”이라며 “사립 유치원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는 점 자체가 눈가고 아웅하더라도 표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 탓”이라고 비난했다.

(자료=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 ‘2016년 교육통계 연보’)
만 3세부터 5세까지의 유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교육부가 관할하는 국공립 유치원과 사립유치원으로 나뉜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2016년 교육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4월을 기준으로 전국의 유치원은 모두 8987곳이다. 이 가운데 국공립은 4693곳(52.2%), 법인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은 4291곳(47.7%)이다. 국공립 중 국립유치원은 현재 공주대 사범대학 부설유치원, 교원대 부설유치원, 부산대 부설유치원 3곳 뿐이다.



그나마 국공립유치원 중 병설이 4388곳(93.6%), 단설이 305곳(6.4%)으로 병설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단설 유치원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에 불과하다.

규모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단설 유치원의 학급은 통상 6~8학급이며 대도시의 경우 20학급 이상인 대형 유치원도 있다. 병설은 1~5학급 정도의 소규모가 대부분이다.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병설 유치원 비중이 크다보니 숫자는 비슷해도 원아수는 사립이 월등히 많다.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가 교육통계연보를 바탕으로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24.2%(17만 91명), 사립 유치원 취원율은 75.8%(53만 3798명)이다.

학부모들은 이처럼 좁은 문이지만 국공립 유치원을 선호한다. 높은 가성비 때문이다. 국공립 유치원은 지원금을 고려하면 사실상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반면 사립유치원은 영어, 체육 수업 등 다양한 특별활동비 등으로 인해 매달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이상 비용이 발생한다. 교사들의 수준 차이도 크다. 임용고시를 통과한 교육공무원인 국공립유치원 교사들은 사립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와 직업 안정성을 보장 받기 때문에 교육 경험이 많은 우수한 인력 비중이 높다.

병설과 단설 중에서는 단설유치원이다. 단설은 병설에 비해 원비가 다소 비싸지만 사립유치원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반면 독립된 시설에서 유아교육 전문가인 원장을 맡아 운영한다. 병설은 초등학교 빈교실 등 유휴시설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 원장은 초등학교 교장이 겸임한다. 특히 방학이면 문을 닫고 하원시간이 일러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기피대상이다.

안 후보측 또한 단설에 대한 수요가 월등히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단설은 부지 확보와 건물 건립 등에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병설 학급을 늘리는 게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안 후보 측은 병설유치원을 6000학급을 늘리면 국공립 유치원 이용률을 40%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안 후보 캠프에서 관련 공약을 제안한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병설을 육성해 ‘단설 같은 병설’을 만드는 게 공약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조 교수는 “학급수 10개가 넘는 대형 단설 유치원은 교사가 일일이 원아들을 관리할 수 없다보니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굉장히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각 학교 당 학급수를 1~2개씩 늘리는 방식으로 병설 유치원 학급을 6000개 추가 설치하고 초등학교 교장 대신 별도로 유아교육 전문가를 원장으로 임명해 병설이지만 단설같은 ‘병설형 단설’ 형태로 운영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안 후보의 교육공약 중 핵심은 학제개편”이라며 “만 6~7세였던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면 유치원에 다니던 한 학년이 초등학교로 넘어가기 때문에 국공립 유치원 취원율을 높일 수 있고 유아교육 예산도 1조원 가까이 절감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역시 만 5세에 입학하는 학생을 수용할 초등학교내 공간 확보와 이들을 교육할 교사 인력 등 해결해야 활 과제가 적지 않다.

특히 전문가들은 유아 발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취학연령을 앞당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권희경 건국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만 5세는 아직 여러 놀이와 부모 및 선생님과의 애착관계를 통해 정서나 사회성을 쌓아야 할 나이다. 학구열이 높고 경쟁문화가 심한 한국의 학교 문화에 비추어 보았을 때, 아이들을 일찍 취학시킨다면 정서 발달 측면에서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립 유치원 교사 정모(36·여)씨 역시 “공교육화가 비용이나 복지 측면에서 보았을 때 분명 필요한 수순이지만, 유아기를 억지로 당겨 초등학교에 입학시킨다는 발상은 이해가 안된다”며 “만 5세 아이들이 과연 초등학교 시스템에 적응을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