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가 받은 보증금 일부가 후순위로 밀린 까닭[판례방]
by성가현 기자
2026.05.09 12:30:03
■의미있는 최신 판례 공부방(73)
LH 입주자, 거주 전세임대주택 사들이자 배당액 일부 후순위 채권자로
대법 "입주자 주택 소유자되면 임차인 대항력·우선변제권 모두 소멸"
주임법 제3조 제2항의 허점은 입법으로 풀어야 한다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집주인과 임대차계약을 맺고, 무주택 저소득층 입주자를 따로 정해 다시 전대차계약을 맺는 것이 전세임대주택 제도다. 그렇다면 그 입주자가 살던 집을 자기 이름으로 매수하면, 임차인인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보증금은 어떻게 될까. 대법원이 이 물음에 답을 내놨다(대법원 2026. 2. 26. 선고 2025다210305 판결).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012년 1월 부산의 다세대주택 소유자와 임대차계약을, 같은 날 입주자와 전대차계약을 맺었다. 입주자는 곧바로 입주해 주민등록을 마치고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도 받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차인 한국토지주택공사는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갖췄다. 5년 뒤인 2017년 11월 소유자는 그 집을 입주자에게 매도했고, 12월 8일 입주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끝났다. 그런데 같은 날 한 은행이 매수자금을 담보로 그 집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전대차 해지를 통보하고 보증금 4750만 원의 반환을 구해 승소했다. 2021년 강제경매가 개시됐고, 2023년 7월 배당기일에 집행법원은 한국토지주택공사에 4750만 원, 근저당권을 양수한 한국주택금융공사에 4400만여 원을 배당했다.
이 배당표를 두고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입주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끝난 시점에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대항력은 이미 소멸했으므로 후순위로 배당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과 부산지방법원 모두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유지했다.
쟁점은 주민등록의 효력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이 주택 인도와 함께 대항력의 요건으로 정한 주민등록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그 주택을 거래하려는 제3자에게 임차권을 알리는 장치다. 주민등록이 형식만 갖췄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라, 그 주민등록이 보여주는 점유관계가 임차권을 매개로 하는 점유임을 제3자가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항요건은 한 번 갖춘 뒤에도 효력을 유지하려면 개별 요건들이 존속해야 한다.
문제는 입주자가 그 집의 소유자가 된 순간 주민등록의 효력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입주자가 한 주민등록은 더 이상 임차인으로서 거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임차인(정확히는 전차인)이 소유자가 됐기 때문이다. 같은 날 그 집에 돈을 빌려준 은행으로서는 새 소유자(구 임차인) 명의의 주민등록이 사실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보증금을 담보하는 임차주택의 입주자임을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그 주민등록은 더 이상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이 말하는 공시방법이 될 수 없고, 대항력은 소유권 취득 시점에 소멸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입주자가 보증금을 돌려주기 전까지 자신의 대항력은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그것만으로 공시 효과까지 이어진다고 보지 않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2항이 법인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입법 취지가 있다 해도, 그 취지를 끌어와 같은 법 제3조 제1항의 대항요건 해석을 임차인이 소유자가 된 뒤에까지 확장할 수는 없다고 봤다. 입법으로 해결할 사안이지 해석으로 메울 일이 아니라는 취지다.
이 판결은 한국토지주택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 같은 전세임대주택 운영기관과 그 재원을 제공하는 주택도시기금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매수와 근저당이 동시에 일어나면 임차인의 보증금은 후순위로 밀려 회수가 어려워지고, 그 손실은 결국 공익 사업의 재원으로 메꿀 수밖에 없다.
운영기관이 떠올릴 만한 자구책은 매도가 예정된 단계에서 임대인의 협력을 얻어 임차권 설정등기(민법 제621조)를 미리 마쳐 두는 정도다. 매도인과 실거주자가 통지 없이 매매·소유권이전·근저당설정을 같은 날 일괄 처리해 버리면 협력을 받을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데, 이번 사건이 바로 그런 사안이었다. 임대차계약에 사전통지 의무를 둬도 사후의 손해배상 청구만 가능할 뿐, 뒤바뀐 우선순위는 되돌리지 못한다. 결국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같은 자리에 같은 사람이 살아도, 그 사람의 지위에 따라 임차인의 보증금 순위는 달라진다. 입주자가 그저 임차인으로 살고 있을 때는 보증금이 1순위로 보호되지만, 그 집을 사들여 주인이 되는 순간 후순위로 밀린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