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피용익 기자
2013.06.10 17:11:55
장관급회담서 당국회담으로 명칭 변경..김양건 불참 시사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이산가족 의제..비핵화 논의 불투명
[이데일리 피용익 이민정 기자] 오는 12일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회담은 6년만에 마련되는 고위급 대화의 장이다. 그런 만큼 경제협력에서부터 인도적문제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의제가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반면 일정은 1박2일에 불과하다. 따라서 상당히 밀도 높은 대화가 오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대표단 구성에서부터 양측이 이견을 표출한 만큼 현재로선 이번 회담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남북 실무접촉 대표로 참석했던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은 10일 브리핑에서 “합의하기 쉽고 의견 절충이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회담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회담 한번으로 지금 제기되고 있는 모든 남북간 현안이 다 협의·해결되고 타결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 남북회담은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열렸던 ‘남북장관급회담’과는 내용과 형식 면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명칭이 ‘남북당국회담’으로 바뀐 점이 주목된다. 그만큼 참석자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확대했다는 의미다.
명칭 변경은 북한 측이 먼저 요구했다. 우리 정부는 논의 과정에서 ‘남북고위당국회담’이라는 표현을 제안했다. 북한에서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북측 대표단의 수석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김양건의 참석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한 북측이 이 명칭을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고위’라는 표현을 뺀 채 새 이름이 결정됐다.
장관급회담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부터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회담 명칭을 바꾼 것은 새 정부의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이라는 의미를 고려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요구한 명칭이 무산됨에 따라 시작부터 북측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 의견을 감안하는 한편 회담의 명칭 보다는 남북문제의 실질적 협의‘해결이 중요하고 새 정부의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이라는 의미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회담 명칭에서 ‘고위’라는 표현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김양건이 북측 수석대표로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실무접촉 발표문 4항도 남북이 다르다. 우리는 “남측 수석대표는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 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고, 북측은 “북측 단장은 상급 당국자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 통전부장은 부총리급으로 알려져 있다. 즉 우리측의 통일부 장관의 카운터파트너가 되기에는 격이 다르다는 게 북한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과거 21차례의 장관급회담에도 통전부장이 아닌 내각참사를 내보낸 바 있다. 그러나 내각참사는 우리측 장관보다 격이 낮다.
이번 회담의 북측 수석대표로는 원동연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그는 지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양건 통전부장 등과 함께 조문단으로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앞선 장관급회담에서 대표단장으로 나선 전금진 참사는 사망했고, 김령성, 권호웅 참사는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나 있어 참석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남북이 수석대표를 포함, 각각 대표 규모를 5명으로 합의함에 따라 전체 대표단 규모는 수행·지원 인원까지 포함해 35~50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남북회담은 과거 장관급회담에 비해 짧은 기간에 치러진다. 지금까지 21차례 열린 장관급회담은 최소한 2박3일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2001년 11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6차 회담의 경우는 5박6일 동안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 남북당국회담은 12일부터 13일까지 단 1박2일 동안 열린다.
반면 의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포괄적이다.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굵직한 사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실무접촉 때와 마찬가지로 자정을 넘기는 ‘마라톤 회담’이 진행될 공산이 크다.
북측 대표단이 항공편 대신 경의선 육로를 이용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지금까지 21차례의 장관급 회담에서 양측은 상대방의 회담 장소를 방문할 때 늘 항공편을 이용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의전과 형식보다는 해결해야 할 의제가 더 부각되는 행사라는 점에서 시간과 비용 면에서 유리한 육로 이동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남북당국회담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신뢰 프로세스의 대전제인 북한의 비핵화는 회담 의제로 다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진통 끝에 10일 새벽 발표된 발표문에 따르면 이번 회담의 의제는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 이산가족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 등 당면하게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북한이 회담을 제의하자 “여러 현안을 해결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당장 비핵화를 압박하는 회담이 아닌 ‘신뢰 구축을 위한 대화의 장’으로 여기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통일부 당국자는 “지금 남북간 가장 시급한 현안들에 대해 논의를 주고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의제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6년만에 열리는 첫 회담부터 비핵화를 강요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북측에 6자회담 복귀를 요구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