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진우 기자
2004.06.29 17:54:54
[edaily 이진우기자]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말은 개인들의 재테크에만 적용되는 단어는 아닌듯합니다. 거래소와 코스닥에 상장·등록된 상당수의 기업들도 부동산 잘 사뒀다 팔자(?)를 고치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영업실적은 부진한데 사둔 부동산 값이 오르는 바람에 몇년간의 적자를 한번에 만회하는 회사들을 보면서, 주주들은 환호성을 올리지만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이 개운치 않습니다. 증권부 이진우 기자가 전합니다.
제가 아는 코스닥 업체의 모 사장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업 시작한지 10년이 넘어 가는데 내가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단은 장외 벤처기업 투자하자는 이사들 반대를 무릅쓰고 보유자금 절반 이상을 털어서 우리 사옥사고 공장부지 구입한 겁니다. 그때는 그냥 내 건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산 건데 그거 아니었으면 우린 벌써 망했어요"
코스닥의 벤처기업들이 어려운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만 지독한 불경기 속에서도 마음 한쪽이 든든한 벤처기업들이 있고, 정말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좀 여유가 있는 쪽은 대개 공장이나 사옥이 있는 회사들이죠. 정말 맨주먹으로 뭉친 벤처기업들은 정말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입니다. 예를 들어드리죠.
코스닥에 등록된 C사는 최근 입주하고 있는 사옥을 팔았습니다. 250억원이나 받았죠. 그도 그럴것이 C사의 사옥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요지에 자리잡은 건물입니다. 이 회사는 4년전인 2000년에 이 건물을 약 150억원에 샀습니다. 이 회사는 2000년에 코스닥에 등록해서 공모자금으로 430억원을 끌어들였는데, 이 돈 중에 30% 정도를 써서 건물을 산 거죠.
그런데 "4년만에 100억원을 앉아서 벌었구나. 좋겠다, 부럽다." 이러고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이 회사는 등록 첫해인 2000년 23억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이듬해부터 매년 1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합니다. 2001년부터 3년동안 무려 45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공모자금을 모두 소진했지만 여전히 100억원가량의 현금을 갖고 있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부동산 때문입니다. 이 회사직원들이 3년동안 열심히 사업해서 450억원을 까먹었는데, 회사 사옥은 3년동안 100억원을 벌어준 거죠.
또 다른 벤처기업 B사도 99년 초에 서울 강남 요지에 약 90억원을 들여 사옥을 샀습니다. 이 회사 사장은 벤처사업가의 대부격으로 꼽히던 인물이라 투자를 기다리는 수많은 후배 벤처기업을 제쳐두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았었죠. 아무튼 이 회사는 이 사옥을 산 이듬해인 2000년 15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이어갔습니다. 3년동안 약 70억원 가량의 누적적자를 기록했죠.
하지만 작년 12월, 이 회사는 강남 요지에 자리잡은 그 사옥을 170억원 받고 팔았습니다. 장부가에 비해 70억원이나 더 받았죠. 3년간의 사업부진을 현명한(?) 부동산 투자로 깨끗이 만회한 겁니다.
벤처기업만 이런게 아닙니다. 역시 서울 강남에 사옥을 가진 S증권은 지난 3월에 1265억원을 받고 건물을 팔았습니다. 1년반쯤 전인 2002년 8월 1100억원에 이 건물을 샀으니, 약 160억원의 차익을 올린 셈입니다.
이 회사는 작년에 31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는데, 사옥을 안팔았으면 18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할 뻔 했죠. 이 회사는 올해도 사옥을 판 돈을 바탕으로 주주들에게 130억원의 배당금을 돌렸습니다.
"코스닥에 등록해서 한 300억 되는 돈을 받았어요. 직원도 더 많이 뽑고 관련 기업에 투자도 하고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남은게 하나도 없네요. 그때 사옥이라도 샀으면 좋았는데 부동산 오르면서 임대료만 더 올라서 강북으로 사무실을 옮겼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참 여러가지를 좌우하네요"
B사나 C사와 비슷한 시기에 코스닥에 올라왔지만 지금은 증자를 위해 주가관리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 벤처업체 사장의 말입니다. 증자에 실패하면 부채 막을 일이 큰 걱정이랍니다. 자회사에 많은 돈을 쏟아 부었지만 IT경기가 어려워지자 같이 기울었답니다.
부동산 투자가 무조건 나쁜것도 아니고, 땅값이 올라서 비싸게 판 건데 그걸 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몇년씩 적자를 이어오다가 부동산을 팔아 한 번에 적자를 만회하는 회사들을 보면 "과연 저 회사가 우리의 미래를 짊어진다는 벤처기업 맞나" 싶은 생각도 들구요, 그러다가도 "그래, 저 정도 선견지명은 있어야 우리 미래를 짊어지지"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